2014년 9월 27일 토요일

화면이 나간 넷북에 centOS 서버를 설치함

901 옹께서 눈이 침침해 지셔서 랲탑으로의 제 기능을 사실상 상실하셨기 때문에 이제 여기다가 서버를 박아넣고 쓸까 생각 중입니다. 마침 네트워크 공부 중이기 때문에 일단 리눅스 서버 중에서 제일로 군림하시는 CentOS를 깔고 적당히 배우는 중. 그런데 역시나 리눅스인지라 처음 깔고 잘못 설정해서 재설치, 만지다가 오류나서 재설치, 그럭저럭 하는가 싶더니 또 오류. 그래서 세번째 재설치를 한 지금 일단 기초적으로 transmission과 ftp는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할 것은 많이 남았다는 거....


근데 화면이 안보이는데 어떻게 했냐고요? 그야 모니터를 연결했으니깐요'ㅅ'b 깔고 난 뒤에는 SSH로 접속해서 CLI로 서버 만지고요'ㅅ'


근데 학원에서 네트워크만 배우는지라 프로그래밍을 할 줄 모름 ㅋ'ㅅ'

2014년 9월 10일 수요일

남의 역사관과 사상을 운운하기 전에 기초적인 역사는 공부하고 합시다

최근에 보니 류관순 열사가 고등학교 역사 검정 교과서에서 삭제되었다는 보도가 일부 매체를 통해 나왔습니다. 그 언론에서 보도한 출판사의 말은 "이미 배운거기 때문에 삭제한거다"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갑자기 그 출판사는 좌익 친일 출판사로 찍혔습니다. 단지 류관순 열사를 내용에서 뺐다는 이유만으로요.

저는 그 출판사의 교과서를 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태가 이 정도까지 왔으면 그래도 후속 기사라도 나왔을텐데 출판사에서는 후속 보도를 내보내지 않았죠. 자칫 잘못하면 회사 문 닫아야 할판인데 누군들 변명이든 뭐든 해야 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겠죠.

그러다가 이 출판사의 변명 아닌 변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897552476924888&set=a.408536285826512.112769.100000104334973&type=1&permPage=1

요컨대, 이미 중학교 과정에서 배운 내용인데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똑같은 내용을 왜 또 배울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내용을 언론에서는 앞에를 싹 짤라먹고 뒷부분만 보도한 것이었죠.

이 내용에 대해 누군가가 이런 딴지를 걸더군요. 그런 식이면 이순신은 중학교 때 배웠으니 고등학교에서 삭제해야 하냐고요.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교육적으로 생각할 때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중학교 교육 과정과 고등학교 교육 과정은 다릅니다. 초등학교에서 1 더하기 1을 배웠다고 그걸 고등학교에서 또 배워야 할까요? 초등학교에서 배운 A,B,C,D를 고등학교 가서 다시 해야 할까요? 실상 교육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때 류관순 열사는 그 1 더하기 1수준의 상식입니다. 이순신 장군도 따지고 보면 크게 다를 것도 없고요.

흔히 우리가 아는 역사 인물에 대해 배우는 것을 전기물적 교육 방식이라 합니다. 즉 사회에 대한 연구나 복잡한 내용보다 인물 위주로 기초 역사를 익힌다는 것이죠. 이게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초등학생들한테 복잡하고 어려운 역사 용어를 알려 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깐요.

다만 전기물적인 역사 교육에도 단점이 있는데 누군가를 띄워주기 위해 주변 인물들이 악인이 되거나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모든 인물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로인해 이야기를 구성하다보면 그냥 반대 입장이었던 사람이 도저히 쉴드 쳐주기도 어려운 악당 수준으로 몰리기까지 하죠. 거기에 요즘에는 재평가라는 이름으로 쉴드 쳐주기도 어려운 부분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미화까지 해서 알려주기도 하죠. 대표적으로 명성황후 정도가 있겠군요.

그래서 이런 교육 방법도 미국에서는 초등학교까지만 알려주고 맙니다. 그것도 여러 사람 가르치는게 아니라 몇 사람 정도만 하고 마는 식으로 끝나고 말죠. 미국도 이런데 한국에서는 그 교육을 중학생이 되어서도 하고 있죠. 수준 차이가 어디서부터 나오게 되는지 알만한 일입니다.

고등학교 과정은 초중등학교 교육과는 엄연히 차이가 커야 합니다. 인물 신변 잡기나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사회상과 유물, 문화, 정치 등에 대한 이해를 키워야 합니다. 그것만 해도 벅찬데 중학교 때 배우던 류관순을 또 배워야 한다? 이건 문맹은 아니지만 사람 문맹으로 만드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교육 방식을 마치 정형화된 교육 모델인 것처럼 생각하기까지 하죠.


이런 전기물적 형식의 교육을 고등학교까지 배우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 학생들은 초등학교 수준의 가치관을 그대로 역사라고 배우겠죠. 한마디로 나쁜 놈은 변명할 여지 없이 나쁜 놈인거고 주인공인 위인을 괴롭힌 놈이 되는 거죠. 그리고 패장들은 그냥 패장이고 항상 승리한 장군들만 위대하다고 하겠죠. 소위 영웅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영웅주의 교육을 시행한 나라는 분명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역사적으로 유명한 국가와 집단이 이를 시행했고, 많은 영웅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바로 나치 독일, 일제, 북한이죠. 네, 여러분은 지금 앞에 나열한 국가들이 했던 교육 방식을 답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옳다고 듣고 계신 겁니다. 이 국가들은 몇몇 전쟁 영웅들과 지도자들을 우상화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죠. 왜 이래야 했나, 왜 이런 상황에 빠졌었나 하는 불리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채 영웅들의 위대함만 가르쳤죠. 어디서 많이 보이는 방법이지 않나요? 바로 지금 학생들이 배우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교육인 것입니다.

류관순은 분명 주요 독립운동가들 중의 한 명입니다. 하지만 류관순이 3.1운동을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과연 류관순을 뺐다고 3.1운동의 정신이 훼손되었다던가요? 훼손되었다고 한다면 3.1운동 자체가 없는지 따져야지 3.1운동에 속하는 인물인 류관순이 빠졌다고 그게 친일, 종북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인가요? 민족대표 33인은 없답니까? 3.1운동을 부정하던가요? 소요, 폭동이라고 적어놨던가요?

저는 3.1운동에 대해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류관순을 뺀다고 그걸 친일이라 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3.1운동 자체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분량입니다. 2.8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그외 기타 지방에서 발생한 다양한 독립 운동과 이에 동조한 해외 만세 시위 등도 있습니다. 하지만 1년 동안 배워야 할 양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쓰여져야 하는지는 출판사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두 번 중복으로 류관순을 배워야 한다면 다른 독립운동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결국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역사에 무지한 대중의 우매함 때문이겠죠. 위의 이순신을 언급하며 딴지를 걸던 사람도 결국 제가 사실만 가지고 따지니 이렇게 결론 지어 버리더군요. '견해차이'라고요. 과연 공부만 제대로 했었다면 이게 견해차이로만 끝났을 일이었을까요?

무지가 죄는 아니죠. 하지만 모르면서 남의 말만 듣고는 결론을 내린 뒤 더 알아보지도 않고 까기 바쁜 것은 엄연히 도덕적인 죄악입니다.


역사는 여러분이 고등학교까지 배우고, 그냥 인터넷이나 사극만 보는 것 정도로 지식을 다 얻기에는 방대하고 복잡한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기초적인 지식에 대해 좀 알아보고, 그걸로도 부족하다면 타인의 역사관에 대해 까기보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먼저 생각부터 해보고 자신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지식을 짜맞춘 뒤 남의 역사관에 대해 운운하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모른채 까기만 바쁜 것은 결국 자신이 역사에 무지하다는 것만 광고하는 꼴이며, 결국 자기는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학생들에게만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꼰대짓이나 일삼는 거나 다를바가 없습니다. 어른은 학생들의 미래이자 거울입니다. 어른이 제대로 배울 자세도 갖지 않은채 학생들보고 공부나 하라고 한다면 말로 백날 역사 교육 강화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2014년 8월 24일 일요일

부품을 모아 만든 데탑'ㅅ'b

메인보드:ECS Z77H2-A3
CPU: 인텔 아이비브릿지 팬티엄 G2130
RAM: DDR3 RAM 4GB
SSD: ADATA-PRO SP900 128GB



그외 파워 및 케이스는 집에 원래 있던 것으로'ㅅ'

??: 어? 그래픽카드는 없는데요?


삽질랜드: 전기세 때문에 안 샀다.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핳하하하하하하하핳하ㅏㅎ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하핳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하하하하하하하하하ㅏㅎ하하하하하하하하하!


2014년 7월 27일 일요일

문서용으로 피시를 조립하고 있었는데....

젠장! 메인보드에 모니터 연결 단자가 없다니! 이게 무슨 개짓거리야 기가바이트!

2014년 7월 9일 수요일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살짝 미루고...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Aegisub 강좌는 저도 빨리 마무리 짓고 싶으나 최근들어 넷북의 문제로 인해 화면이 하얘지는 현상이 발생해 간단한 작업을 하는데도 불상사가 생기고 있습니다. 일단 지도와 자막 제작을 하는 작업은 좀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월급 받게 되면 지금보다 좋은 노트북...? 데탑? 어? 뭘로 사지?!?!


아무튼 여유가 있을 때까지는 좀 기다리서야 할 것 같네요. 그래서 지금 새로운 글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지도와 관련된 내용으로 준비 중인데 아직 컨셉도 제대로 잡지 못한 지라 어찌 될진....

2014년 7월 4일 금요일

이것저것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죄송합니다;;;;

요즘에 직장을 다니면서 글을 쓰려니 귀찮은 건 물론이고 피곤하고, 날도 더워서 영 의욕까지 안 서네요;;;


물론 조만간 쓰기 시작할 겁니다. 그 때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소재를 모으고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다. 포텐 터지면 포풍같이 쏟아낼 테니 기대하시길!

기쁘다 요시으리! 오셨네!




비록 이것들을 구하기 위해 만원을 썼지만 전혀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2014년 6월 22일 일요일

2014년 6월 5일 목요일

으헣헝



드디어 취업했네요. 일단 계약직이긴 하지만 일자리가 생겨 정말 다행입니다.
'ㄱ'/

2014년 6월 4일 수요일

콜롬버스의 서회 항해를 반대한 이유는 지구가 편평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역사책을 보면 콜롬버스의 서회항로를 통한 인도로의 항해를 포르투갈 왕이나 스페인 국왕 등이 반대하면서 그 이유를 "지구는 편평하니 서쪽으로 가면 떨어져 죽는거 아님? 위험하니 투자 ㄴㄴ"라고 해서 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이 주장은 당대 사람들의 과학 지식에 대한 오해이다. 오히려 당시에 지구가 편평하지 않고 둥글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그것도 1천 년 전부터 말이다.


사실, 지구가 편평하다는 생각은 천문학이 발전하기 이전부터는 보편적인 생각이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고차원의 수학과 과학은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고, 전승되는 이야기에 근거해서 지구가 네모 편평하다고만 생각했다. 당시의 세계 지도라는 것을 보면 지구 밖은 매우 위험한 세상으로 그려져 있거나 아니면 매우 양심적으로(...) 자기가 아는 곳까지만 그려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지구가 둥글 것이다라고 깨달은 학자들은 많았고, 많은 이들이 여행기나 관련 자료에 이에 대한 증거를 썼다. 그리고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밤에 밝게 빛나는 달의 일부분이 어두워지는 현상이 사실은 태양빛을 반사해서 반짝이던 달에 그림자가 져서 그런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그림자는 바로 달과 태양 사이를 가리고 있는 지구의 그림자라는 것까지 깨닫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증거를 시작으로 그리스의 수학자들은 지구가 둥글다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리스 수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하기에 이르렀다.


시에네(지금의 아스완)의 우물에 하지날 태양빛이 바닥까지 비치는 일이 있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이 이야기를 듣고 비슷한 시기, 자신이 살고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우물은 어떤지 살펴봤다. 그 결과 같은 상황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우물 바닥에는 햇빛이 비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결과 에라토스테네스는 태양이 시에네의 우물 바닥을 비추던 시점에 태양의 위치는 수직이라는 것을 파악했고, 동시간 대의 알렉산드리아는 거기서 조금 치우친 위치에 있기 때문에 태양빛이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가 구형이며, 그렇기 때문에 똑같이 내리는 햇빛이 동일한 위치에 내리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지구의 크기를 계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계산을 실시함으로써 그것이 옳다는 것을 증명했다. 단, 에라토스테네스는 당시의 한계로 인해 가정에서 몇 가지 부분이 틀렸고,(가령 지구는 완벽한 구형이 아니다) 그로 인해 계산 방법에 따라 오차는 실제와 2%(현재의 미터법을 이용한 자의적 해석 기준)에서 20%까지 나타난다.


어쨌든,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로마와 아랍, 이집트 등으로 퍼져 나갔고, 그 후계자들은 이런 사실을 잘 이어 나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가 편평하다는 주장은 계속되었다. 물론 그것은 압도적인 수준이 아니었고, 종교가 과학을 찍어누르던 시대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냥 가벼운 입씨름 정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적어도 콜롬버스 시대에는 지리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 지던 시점이었고, 적어도 콜롬버스를 제외하더라도 왕실의 지도학자들이라면 확인은 안되지만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 쯤은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 국왕과 스페인 국왕 등이 투자를 거절하고 외면했던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콜롬버스는 자기 나름대로 지구가 둥글다고 가정하고 지구의 크기를 계산해 봤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했다. 콜롬버스는 자신의 가정과 계산의 조건들 중에서 몇가지 중요한 부분들을 실수로 놓치고 말았다. 그 계산의 결과 콜롬버스는 지구의 둘레를 2만 5천 킬로미터라고 계산해 버리는 중차대한 실수를 저질르고 말았다. 이 실수가 얼마나 큰거냐면, 실제 지구의 둘레는 약 4만 킬로미터이다. 즉, 콜롬버스는 계산 중 태평양과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을 싹 지워버리고 계산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서는 북서부 아프리카의 카나리 제도와 일본(지팡구)의 거리가 고작 3,700킬로미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물론 실제는 그것의 열배가 넘는 거리였으며, 콜롬버스의 계산에 따른 위치에는 바다만 있었을 뿐이었다....


자기 계산에 이렇게 나오니 콜롬버스는 당연히 서쪽으로 가면 지금보다 덜 힘들이고 인도까지 갈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궁중의 학자들은 이를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에라토스테네스의 수학 계산대로라면 실제가 얼만지는 몰라도 어느정도 오차 등을 감안해도 적어도 3만 5천 킬로미터는 넘는 크기의 지구인데, 거기서 반절 가까이 차이가 나는 주장을 하며 투자해 달라고 하니 미친 놈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결국 콜롬버스가 투자를 못 받았던 것은 당시의 편견 때문이 아니라 콜롬버스의 말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콜롬버스는 자기에게 발견한 재물의 10%를 떼어 달라느니, 그곳의 총독으로 임명해 달라느니라는 둥, 무리한 요구를 많이 했기 때문에 거절 당한 것이었다.


어찌되었든 콜롬버스는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을 유럽에 알렸고, 그는 죽을 때까지도 자기가 발견한 곳이, 인도, 혹은 아시아라고 굳게 믿었다. 물론 그 근거는 그 때쯤이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그의 계산에 근거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한편, 세간의 인식과 달리 실제 지구 편평설의 주장은 그 이후에도 굽혀지지 않았다. 심지어 19세기의 영국 과학자 사뮤엘 로버텀은 지구가 편평하다는 주장을 했고,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지구편평학회라는 조직까지 만들어질 정도였다. 결국 1946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V2 로켓을 대기권으로 쏘아보내면서 촬영시킨 카메라의 영상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확인되고 나서야 이 모는 논쟁은 종식될 수 있었다.

2014년 6월 3일 화요일

영어 개 후달리는 건 역시 어쩔 수가 없음요.....

Moscow To Stalingrad에서 스탈린그라드 부분 번역하려고 하는데 한 쪽 번역하기도 좀 많이 어렵네요....

물론 요즘에 장시간동안 진득하니 붙어서 공부하거나 자료 모으는데 게으르다 보니 그렇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요즘엔 좀 문제가 많긴 하죠.... 돈도 없고, 일자리도 없고....


 그러고 보니 토익 본지 한참되었는데 토익 시험 좀 다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메르카토르 도법에 대한 잘못된 오해

메르카토르 도법은 우리가 흔히 세계지리책에서 볼 수 있는 지도를 편집하는 방식을 말한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구의 형상을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규칙 같은 것이다.

지구는 불완전한 구체인데, 이를 세계지도로 표현하자면 엄청난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비유하자면 오렌지를 한 장의 종이에 완전히 감싸려고 하면 아무리 잘 밀어도 오렌지를 감싸는 종이에는 구김이나 주름이 생기게 된다. 물론 종이를 잘게 잘라서 부분부분 붙인다면 주름이나 구김은 생겨나지 않는다. 지도도 마찬가지다. 일부분만을 확대한 대축척 지도에서 오류는 매우 적게 나타나지만, 대축척 지도들의 축척 비율을 줄이고 줄이면서 나타나는 소축척 지도들은 결과적으로 미세했던 오류가 하나둘씩 눈에 띄게 나타나면서 거대한 오차를 발생시키게 된다.

평면지도가 바로 이런 오차를 발생시키는 요인이다. 만약 지구를 한 장의 평면 지도로 표현해야 한다면 우리는 지구를 여러 갈래로 잘개 쪼개놓은 매우 흉측하고 이해하기에 매우 곤란한 모습으로 봐야 한다. 이에 대한 오차를 줄이고자 만들어진 것이 바로 지도 투영법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메르카토르 도법이다. 메르카토르라는 이름은 16세기의 지도제작자에서 따온 이름인데, 그가 만든 지도 투영법을 그의 이름을 따 메르카토르 도법이라 부르는 것이다. 메르카토르 도법의 가장 큰 특징은 지도 전체가 네모난 평면을 완전히 덮고 있으며, 방향에 있어서만큼은 다른 투영법들에 비해 매우 정확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점 때문에 16세기에 메르카토르 도법의 지도는 항해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한편, 이 지도 또한 다른 지도와 마찬가지로 오류가 있었는데, 방향에 대해서 몰빵한 만큼 다른 부분들에 있어서는 왜곡이 상당히 컸다. 이유는 바로 지도 전체가 사각형의 평면을 완전히 덮고 있다는 점 때문인데, 구체를 평면상에 표현하자면 아래 그림들처럼 그려야 했다.

호몰로사인도법 출처

에케르트 제4도법 출처

시뉴소이달도법 출처


메르카토르 도법은 이를 무시하고 아예 극지점을 늘려서 사각형에 맞췄는데,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에 고위도 지역이 대폭 커져 보이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즉, 적도에서 위로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왜곡되어 보이는 현상이 뚜렷하고 심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 지도에 대한 오류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들을 정리해 보자면,

1. 지도에서 러시아는 아프리카와 맞먹는 크기이나 실제로 러시아의 국토 면적은 아프리카의 절반 수준이다.
2. 지도에서 그린란드는 아프리카와 맞먹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 그린란드와 아프리카의 면적 차이는 14배 가량이나 난다.
3. 한반도와 아이슬란드는 크기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 면적은 남한 면적에 비슷하다.
4. 독일이 일본보다 더 커보이나, 실제로는 일본이 독일보다 더 크다. 

뭐 이정도가 되겠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메르카토르 도법이 서구중심적 사상이 낳은 왜곡된 지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그건 잘못된 편견이다. 메르카토르 도법은 어떻게 꾸며도 저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며, 유럽이 아프리카보다 크게 나온다거나 하는 것도 정말 우연찮게 나타나게 된 현상이다. 애초에도 말했지만, 이 지도는 항해용으로 장거리 항해시 위치와 방향을 정확하게 잡을 수 있는데 주안을 둔 지도이다. 거기다가 적도를 횡축으로 두고 있는 모습으로 인해 읽기가 쉽고, 평면을 가득 채운 덕분에 이해하기는 더 쉬워서 일반 보급용으로도 잘 나가는 도법이었을 뿐이었다. 위의 다른 도법의 지도들을 다시 한 번 보고 비교해 보자. 과연 판매자라면 어느쪽 지도를 팔았겠는지.

애초에 메르카토르 지도를 까기 위해 만들어진 지도라는 것도 세계 지도로 꾸미면 오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실제 오류가 있었음을 지적하기 위해 메르카토르로 만들어진 지도의 객체들을 일부러 압축시켜 비교하기도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쪽이 더 왜곡된 이미지이다. 그나마 이런 오류를 줄이고 줄인게 20세기 밀러라는 사람이 만든 밀러 도법인데, 이쪽도 결국 극지방의 오류는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메르카토르 도법 출처


결과적으로 구글어스 등으로 인해 지금은 지구를 구체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평면 지도 쪽에서는 여전히 이 문제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이다.


결론: 문과놈들 자기 머리로 이해 안된다고 음모론 ㄴㄴ염. ㅉㅉ

2014년 6월 2일 월요일

으아아아아....

지도에 관련된 전쟁사를 쓰려고 했더니만, 어마어마할 정도로 자료가 안나오는 군요;;;;;


이거 보통 때도 별로 자료가 없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로 없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심지어 지리에 어두워 패했다는 기록은 많았던 것 같은데, 정작 그게 어느 전투에서 그랬다는 건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양은 많으면서 정작 살이 있는게 없네요;;;;

2014년 6월 1일 일요일

음... 페이지뷰가...

평균은 커녕 하루도 100이 넘는 날이 지금까지 딱 한 번 밖에 없군요;;;;;


이러다 저품질로 떨어지게 되는 것인가;;;;;


2014년 5월 30일 금요일

Aegisub 자막 만들기-(1)제작 인터페이스

Aegisub 자막 만들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Aegisub은 smi와 달리 디자인 자막이 가능한 자막 생성 프로그램인데, smi로 주기 어려웠던 복잡한 구조의 자막을 만드는데 매우 편리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자막을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마음껏 둘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죠. 물론 만들다 보면 smi 자막보다 더 많은 양의 정보를 가지면서 무거워 지는 것은 덤. 그리고 한국산 미디어 플레이어 중에서는 다음팟 외에는 제대로 지원해 주는 곳도 없다는 게 함정이죠. 오히려 외국산 미디어 플레이어는 대부분이 ssa/ass 자막을 지원해 줍니다. 심지어 대부분은 smi의 자막 기능을 지원해 주지 않는 경우도 많고요.

보통 mkv로 된 영상 파일이 많이 있고 그 안에 자막 파일이 내장된 경우가 많은데, 이 내장된 자막 파일이 ssa/ass 자막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떻게 보자면 보는 사람을 위한 배려라고도 볼 수 있죠. 한국에서는 보통 영상 파일 따로, 자막 파일 따로 주지만, 외국에서는 한꺼번에 묶어서 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자막제작+변환까지 하느라 실질적으로 시간은 좀 걸리기는 하지만 말이죠.

그럼 본격적으로 ass 자막, aegisub 자막을 만드는 것을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OS는 리눅스 우분투의 일부인 루분투입니다. 따라서 절대 다수의 윈도우 유저들과는 설치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설피 방법에 대해서는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위의 사진은 기본 시작시 사진입니다. 아직 파일을 불러오지 않은 상태인데요.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바로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막을 만드는데 쓸 파일은 히마다리 스케치 1기 특별편 1화입니다. 이유는 유일하게 자막을 제 손으로 직접 만든 거기 때문이죠....

일단 상단 메뉴 쪽에 보시면 Video과 Audio라고  쓰여진 메뉴가 있을 겁니다. Aegisub에서는 동영상 파일 하나만 불러오면 소리와 영상 모두 가져오는게 아니라, 영상과 오디오를 따로 가져오기 때문에 이를 주의해야 합니다.

오디오 파일과 비디오 파일 둘 다 열어놓은 상태입니다. 현재 사진은 화면의 크기가 작은 넷북에서 찍은지라 좁게 나오는 거고, 실제 넓은 모니터에서 할 경우에는 더 크게 나오니 부담을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먼저 각 구간에 대한 설명부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비디오 파일은 영상만 나오는 부분입니다. 기본적으로 오디오 파일까지 열려 있는 상태라면 재생시 영상과 소리 모두 재생됩니다. 영상 아래에 있는 개체들은 재생과 관련된 부분들인데, 위를 향하는 화살표가 놓인 줄은 재생 위치입니다. 위치 조절은 가능하나, 세부적으로 쓰긴 어렵고 그냥 크게 움직일 때나 쓸모 있습니다.

그 아래에서 왼쪽에 세 버튼은 눈으로 봐도 알 수 있듯이 일반 재생버튼과 구간 재생, 일시정지 버튼입니다. 구간 재생 버튼은 싱크 등을 맞추는데 필요한 반복적으로 틀어야 할 부분에서 많이 쓰이는 물건입니다. 그 오른쪽에 Auto라고 쓰는 물건은 당장은 별 필요가 없는 물건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운데에 있는 숫자들은 당연히 재생시간을 표시한 겁니다. 0.001초까지 표현이 가능하며, 그 옆에 1 프레임까지 잴 수 있게 해놔서 세밀하게 싱크 작업이 가능하게 합니다. 그 옆의 +0ms는 구간시작을 재는 용도입니다. 그리고 옆의 %는 작업 화면 크기를 나타냅니다.

다시, 화면 왼쪽을 보면 몇 가지 버튼이 보이는데 이는 나중에 따로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디오 파일 부분입니다. 영상에 들어가는 오디오는 다 표시가 되며, 다만 BD에서 코멘터리 오디오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표현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특별한 기능은 없는데, 주로 대사 싱크에 맞추어야 한다고 할 경우에는 꼭 필요한 기능입니다. 물론 영상으로만 봐야 알 수 있는 글자의 경우에는 이것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죠... 하지만 리소스를 제일 많이 잡아먹는 부분이기 때문에 저사양 컴퓨터 유저들은 영상과 소리 둘 중 하나는 끄고 작업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제 넷북의 경우 둘 다 키고 하면 많이 버벅이기도 하고요...

뭐, 인터페이스 자체는 직관적이라 그냥 보셔도 딱 이해가 될 정도입니다. 다만, 영상 재생과 달리 오디오는 독립적으로 작동되며, 자막 구간의 영향을 받지 않고 따로 오디오 부분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린지는 진행하다보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자막을 실질적으로 입력하는 부분입니다. 기본적으로 입력되는 자막들은 모두 단순한 텍스트들 뿐이며, 화면에 입력되는 효과들을 조정하는 것도 대부분 여기서 이루어집니다. 위에서부터 설명하자면, 위의 코멘트 박스는 개발자만 볼 수 있는 용도로, 영상을 재생하는 과정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즉, 자막 파일 자체를 뜯어서 열어보기 전까지는 그 안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모릅니다.

Default라고 되어 있는 부분은 기본 지정된 스타일입니다. 글씨 크기나 폰트, 기울임이나 색깔 등을 모두 조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각 캐릭터마다 다른 대사나 오프닝/클로징 가사 등을 따로 표현해야 할 때 자막 제작자가 일일이 스타일을 지정해서 넣기에는 불편하기 때문에 미리 구분해서 넣는 것입니다. 즉, 캐릭터마다 저마다 다른 형태와 색깔의 자막을 넣을 때 편리한 용도입니다. 그 옆의 Actor가 그런 용도이기도 한데, 저거 자체는 스타일에 영향을 주지는 않고 그냥 누구의 대사인지만 구분해서 쓰는 용도입니다. 즉 일일이 스타일을 넣을 필요 없는 조연들이 하는 대사의 경우 누가 하는 말인지는 구분해서 쓸 때 쓰는 용도이죠. 그 옆의 Effect의 경우에는 딱히 기능이 없기 때문에 무시하셔도 됩니다.

그 아래 왼쪽의 0이 쓰여져 있고 위아래 화살표가 되어 있는 부분의 경우 자막을 구분짓는 라인 표시인데, 자막이 워낙 복잡할 때 쓰는 것이니 굳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옆의 시계표시는 자막 구간의 시작점과 끝점, 그리고 시간을 표시해 놓은 것인데, 3번째 줄 오른쪽의 Time/Frame에서 시분초를 쓸지, 아니면 프레임별로 끊어서 자막을 쓸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세번째 줄에 있는 것들은 태그 효과들인데 폰트의 기울임, 밑줄, 취소선, 두꺼움, 서체, 글씨 색상 등을 변경할 때 쓰는 용도입니다. 이것도 나중에 태그를 배울 때 쓰도록 하겠습니다.

 자막표입니다. 일종의 시간표 같은 건데, 자막의 시작과 끝점을 표시하며, 자막을 클릭하면 그 위치의 시간으로 영상과 오디오가 이동합니다. 다른 자막과의 간섭 등을 표시하기도 하는 등, 여러 모로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기본적인 인터페이스는 일단 이렇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자막 입력 방법 등에 대해 쓰도록 하겠습니다. 

흐음.... Aegisub 자막 만들기 강좌라도 시작해 볼까....

뭐든 하든 버릇이 있어야 겠죠?

자막도 만드는 버릇이 있어야 좀 잘하게 되는 것일테니깐요....

뭐.... 일본어는 잘 할 줄 몰라서 만들려면 실질적으로 영어 자막을 중역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네요;;;;;


JAVA-자료형

1. boolean(논리형)
논리형 데이터를 이르며, 값은 true, false 밖에 없다.

예제) BooleanExam.java
01-class BooleanExam {
02-public static void main(String args[]) {
03-boolean b=true;
04-System.out.println("변수 b의 값 :" +b);
05-}}

이에 대한 예제의 값은
변수 b의 값: true
 만약 b=1이라고 해도 boolean는 true나 false만 표시하기 때문에 컴파일이 되지 않는다.




2. 문자형
자바는 유니코드 형식으로 다국어를 비롯해 2바이트의 문자를 작성하는데 쓰인다.

예제)CharExam.java
01-class CharExam {
02-public static void main(String args[]){
03-char c='A';
04-System.out.println("c의 값 :" +c);
05-}}

예제의 실행 결과문
c의 값: A

여기서 작은 따옴표('')가 아닌 큰 따옴표("")로 A를 꾸며줄 경우 문자형이 아닌 문자열이 되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한다. 

문자형은 유니코드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유니코드 값을 안다면 대체 가능하다.

예제)CharExam2.java
01-class CharExam2 {
02-public static void main(String args[]){
03-char c= '\u0042';
04-System.out.println("c의 값 :"+c);
05-}}

위 예제의 실행 결과

c의 값 : B
 여기서 \u0042는 유니코드에서 대문자 B에 해당하는 글자이다.



3. 정수형
정수형은 자연수와 0, 음수를 표기하는 방법에 따라 크게 byte, short, int, long으로 나뉘어져 있다.

예제. IntExam.java
01-class IntExam {
02-public static void main(String args[]){
03-byte var1=128;
04-System.out.println("var1의 값 :" +var1);
05-}}

위의 예제를 컴파일 하면 에러가 발생하는데 이는 byte의 값이 127까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이상을 넘어가면 값이 표시되지 않는다.

[정수형의 표현 범위]
byte: -128~127
shot: -32,768~32,767
int: -2,147,483,648~2,147,483,647
long: -9,223,372,036,854,775,808~9,223,372,036,854,775,807

예제. IntExam02.java
01-class IntExam02 {
02-public static void main (String args[]){
03-byte var1=127;
04-short var2=32000;
05-int var3 = 550;
06-System.out.println("var1의 값 :"+var1);
07-System.out.println("var2의 값: "+var2);
08-System.out.println("var3의 값: "+var3);
09-}}

위 예제의 결과
var1의 값: 127
var2의 값: 32000
var3의 값: 550



4. 실수형
소수점을 가지는 자료를 말하며, float와 double 두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실수형의 표현 범위]
float: -3.4E38~3.4E38
double: -1.7E308~1.7E308

예제. FloatExam01.java
01-class FlaotExam01 {
02-public static void main (String args[]){
03-float var1=3.4;
04-System.out.println("var1의 값: "+var1);
05-}}

위의 예제는 오류인데, 3행에 var1 앞에 float를 써 변수 선언을 한 것까지는 맞으나, 이후에 형변환까지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기본형인 double로 변수가 인식되므로 오류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변수에 float임을 명시하거나 형변환을 해주어야 한다. 이는 나중에 알아보도록 하겠다. 먼저 변수를 명시하는 것은 아래와 같다.

예제. FloatExam02.java
01-class FloatExam02 {
02-public static void main (String args []){
03-float var1, var2;
04-var1=3.4f // float형으로 명시
05-var2=550 // 여기서는 int 550이 float 550.0으로 형변환된다.
06-System.out.println("var1의 값 :" +var1);
07-System.out.println("var2의 값 :" +var2);
08-}}

위의 예제 실행 결과
var1의 값: 3.4
var2의 값: 550.0

2014년 5월 29일 목요일

저녁이 되니 좀 진정이 되는군요....

생각해 보니 작년에 이벤트 당첨된 블루투스 키보드가 생각나서 꺼내 왔습니다.

우분투에서 블루투스는 처음 쓰는지라 좀 버벅이긴 했는데 어찌되었든 키보드 문제는 이걸로 좀 넘길 수 있게 된 듯 합니다....

아, 진짜 일만 구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말이죠....

아 망했다...

노트북이 하도 이상해서 다 뜯어보고 청소한 다음에 조립다 해놨는데,

키보드가 엉망이 되어 버렸네요. 위의 F1에서부터 F12까지가 한칸씩 밀려버렸고, 그것도 F1은 되지도 않습니다. 거기다 바로 옆의 물결무늬 키는 되지도 않고, 그 뭐냐 /이거 반대인 키도 먹질 않고, 아무튼 뭔가 세부적인 부분에서 엉망이 되버 버렸네요. 이유를 찾아 보려고 몇번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해 봤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어서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아, 진짜 하루하루가 다 빡치게 만드네요. 돈도 없고, 하고 싶은 일들은 기회도 안 생기고, 컴퓨터는 계속 맛이나 가려고 하고, 진짜 분노장애 올 것 같습니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두드리고 있는 키보드를 두동강 내버리고 싶습니다...


2차 대전사의 최종 목표는....

아무래도 전자책 만들기이죠. 현재 PDF로도 만들어 보고 있지만, 최종적인 확장자는 epub이 될지도 모를 것 같네요...

2014년 5월 28일 수요일

랭카스터 폭격기의 100번째 작전을 마치며



1944년 5월 12일, 오스트레일리아 공군 467 비행중대 대원들이 이날 벨기에로 100번째 작전 임무에 투입되었던 랭카스터 폭격기의 귀환을 축하하고 있다.

참고로 이 폭격기의 횟수 아래쪽에 흰색 글씨로 쓰여진 내용은 괴링이 말한 저 유명한 "우리 제국의 하늘에 단 한대의 적기도 뜨지 못하게 하겠다"이다.

출처: http://www.iwm.org.uk/collections/item/object/205192910

2014년 5월 23일 금요일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연재하기에 앞서 인터넷을 둘러보다

현재 2차 대전사의 연재를 위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대한 자료를 조금씩 수집하고 갈무리 하고 있는 중입니다. 최근에 인터넷에서도 좋은 자료를 수집할 수 있나 알아보려고 검색도 가끔 하고 있고요.

그러던 중에 한가지 깨달은 것이, 인터넷에서도 의외로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자료를 얻는 길이 매우 좁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대해 검색해 보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관련해서 직접적으로 나오는 글이 많긴 합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제가 연재를 위해 가져갈만한 글을 찾아 보려고 하면 사실상 그런 글은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대해서는 영화 스탈린그라드와 연관짓거나, 아니면 에너미 엣더 게이트, 혹은 그냥 저격수 관련 글이거나, 스탈린그라드 전투 부분도 그냥 대충 개요만 짤막하게 적어놓고 끝나는 식이죠.

물론 이런 글들은 대부분이 출처도 없기 때문에 실제 연구자들은 쓸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터넷에서 기댈만한 곳은 위키피디아와 같은 참여형 백과사전 정도겠죠.

하지만 저는 이곳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질의 문제라기 보다는 편집의 문제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니즈는 천차만별입니다. 그래서 그 니즈를 채워주기 위해 참여형 백과사전이라는 게 존재합니다. 하지만 꼭 그 중에는 어디에 넣어야 할지 고민이 되는 부분이 나타나게 됩니다. 특히 이미 완성도가 높게 만들어진 글일 경우 이를 수정하기는 더 어렵게 됩니다. 특히 그것이 논란이 많은 부분이거나 아니면 편집 과정에서 아예 한 문단을 다 갈아야 할 정도라면 신중해 질 수밖에 없고, 그걸 관철시키도 매우 어려워 집니다.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출처와 연구 내용이 반달 행위라고 판단되어 다른 사람에 의해 편집되기도 일쑤죠. 그래서 저는 위키피디아를 쓰지 않습니다.

저는 개개인 모두가 하나의 위키피디아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식은 제각각이고, 알고자 하는 부분도 서로가 다릅니다. 같은 포토샵에 대한 글을 써도 누군가는 디자인용, 누군가는 합성에 대한 용도로서 쓰죠. 마찬가지로 역사를 보는 관점이나 내용도 보는 사람과, 쓰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릅니다.

이미 누군가가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을 레드오션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이너를 파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메이저는 계속 니즈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니즈는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니 그걸 계속 채워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고 있는 내용대로 쓰자면 누구나 다 검색해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요자는 그걸 굳이 찾으려 하지 않고, 또 자기가 원하는 내용도 다를 수가 있습니다.

글을 쓸 재주만 있다면 누구도 자신만의 연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걸 굳이 위키피디아에 올려야만 한다고 생각할까요? 위키피디아가 있기 전부터 인터넷에는 많은 서적과 넷상의 연재물을 참조해서 자신만의 연구 성과를 만든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인터넷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삽질랜드의 GPS 이야기


육하원칙에 따른 논리에서 항상 두번째로 나타나는 것은 '어디서(where)'이다. 이는 뒤에 붙는 '무엇을(what)', '어떻게(how)'를 꾸며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이 두가지가 이루어지는데 있어서는 어디서인지를 아는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만약 여행을 하거나, 운송을 하거나, 누군가를 찾아가야 한다거나, 혹은 기전쟁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자신이 어디에 있고, 목적지가 어디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특히 전쟁이나 국가 재난 상황 같이 거대한 규모일수록 그에 대한 중요성은 엄청나게 커질 수밖에 없다.


역사를 살펴봐도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해 낭패를 보는 사례는 자주 나타났다. 삼국지에서도 항상 장수들이 미로나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포로가 되거나 죽는 게 일반적인 클리세라고 할 정도로 위치를 잃게 되는 것은 중요한 패착 원인 중의 하나였다. 물론 가끔 운이 더 좋아서 헤매다 보니 적의 본진을 찾아내거나 중요한 정보를 얻게 되는 일도 있긴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경우로는 대부분이 길을 잃고 전멸하는 스토리가 더 많았다. 심지어 포병이나 폭격기에 알려줘야 할 좌표를 잘못 알게 될 경우,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될 문제는 치명적이었다.


육분의 #


이런 이유로 인해 고대 때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위치를 알아내는 기술이 전해져 내려왔다. 넓은 평야를 돌아다니는 목동이나 먼 거리를 왔다갔다하는 상인들은 계절과 시기에 따라 나타나는 서로 다른 별자리를 이용해 방향과 위치를 파악했고, 실제로 이런 방법으로 프톨레마이오스는 지리학에서 각 도시들의 위치를 매우 상세히 그릴 수 있었다. 15세기 무렵,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위시한 유럽 국가들이 중심이 된 해양 탐험이 시작된 이후로는 나침반과 육분의를 이용해 태양의 고도를 이용해 위치를 파악 하는 천문 측량으로 위치를 파악하게 되면서 좀 더 정확한 위치 파악이 이루어지고 더 먼 곳까지 항해가 이루어 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여전히 오차가 심했고, 한 번 위치를 잃어버리게 되면 다시 원상 복구 시키는데 복잡한 수식과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이를 적용시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이 노력은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가까지 나서서 더욱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것은 라디오, 즉 무선 전파였다. 실제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폭격기가 런던을 폭격하고자 할 때, 낮이라면 쉽게 하늘에서도 지상의 건물들의 배치 등만 보고서도 런던이라는 것을 알고 폭탄을 투하할 수 있다. 하지만 달도 없는 밤에 등화관제로 인해 도시도 어두컴컴하다면 바로 아래에 있는게 바다인지, 그냥 평야인지, 런던인지 알 길이 없다. 따라서 폭격기의 방향을 유도하기 위해서 폭격기들이 날아가는 방향 후방의 라디오 전송탑에서 라디오 전파를 쏘아서 폭격기들이 곧장 런던 방향으로 날아가게 유도한다. 이때 폭격기에 탄 항법사나 조종사가 헤드셋을 통해 유도하는 주파수의 음향을 쫓아 날아가게 된다. 이후 다른 곳에 위치한 라디오 전송탑에서도 런던을 향해 라디오 주파수를 쏘는데, 조종사의 헤드셋에서 방향을 알려주는 주파수의 음향에서 갑자기 다른 주파수의 음향이 튀어나온다면 이는 서로 다른 곳에서 발사한 주파수가 만나는 지점, 즉 런던 상공이라는 뜻이었고, 그냥 폭탄창만 열어서 폭탄을 투하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2차 세계대전의 폭격기들은 적의 도시에 폭탄을 퍼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약점도 있었다. 적이 주파수를 알아내서 방해 전파를 흘리면 폭격기가 엉뚱한 곳에 폭탄을 쏟아 부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전송탑이 목표지점에 가까운 곳에 있지 않는 이상 전파가 직접적으로 닿지 않는 곳까지는 폭탄을 쏟아 부을 수가 없었다. 만약 적성국 깊숙한 곳, 예컨대 소련 한가운데를 폭격해야 한다면 이런 기술만으로는 정확한 폭격이 불가능했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흘러 1957년, 냉전이 한창인 시절, 미국이 충격에 빠질만한 사건이 벌어진다.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유인우주선 스푸트니크 호를 우주로 발사하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최초의 유인우주선 발사라는 명예를 소련에게 빼앗겨 미국이 한참 충격에 빠져 있을 무렵, 존 홉킨스 대학의 물리학 연구진은 소련이 스푸트니크 호의 선전을 위해 스푸트니크 호에 장착한 라디오의 주파수를 이용해 스푸트니크 호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생각해 낸 방법은 지상에 여러 개의 수신기를 설치해 놓고 스푸트니크 호가 일제히 뿌리는 라디오 신호를 수신기가 잡았을 때 위치마다 다르게 발생하는 시간차를 이용해 스푸트니크 호의 위치를 잡는다는 것이었다.


이 흥미로운 실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미 해군이었다. 당시 미국이 개발한 폴라리스 탄도 미사일은 잠수함에서 지상의 물체를 타격할 수 있는 물건이었으나 문제는 잠수함의 현 위치를 정확히 계산이 가능하게 해줄 방법이 없어서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한 정확한 거리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해군은 독자적으로 바다 한가운데서도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항법 체계 연구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존 홉킨스 대학 연구진의 실험에 흥미를 느낀 미 해군은 이들의 기술을 활용해 위성을 이용한 항법 체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60년 미 해군에 의해 최초의 위성항법체계인 NAVSAT이 시작되었다. 트랜싯이라는 위성이 지구 주변을 돌면서 3년 간 시범 운행을 했고, 마침내 1964년부터 미해군이 보유한 모든 항공모함서부터 잠수함, 경비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군함이 자기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소련도 비밀리에 입수한 모토로라의 수신기(당시 모토로라는 미군의 주요 통신 장비 납품 업체였다)를 일부 군함에 장착하고 이용해 NAVSAT을 몰래 사용하기도 했다.
발사를 준비 중인 트랜싯 위성#


해군이 정확한 항법체계를 원했던만큼, 해군 만큼이나 정확한 항법 체계를 원하던 공군은 옆에서 해군이 새로운 항법 체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하자 배가 아프기 시작했고(...) 무선 전파를 이용한 항법체계의 한계에 부딪치고 있던 공군도 해군의 NAVSAT을 적극적으로 따라해 1978년,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위성항법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GPS였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NAVSAT이든, GPS든, 두 항법체계는 모두 군대에서 개발했으며, 따라서 민간에게는 공개가 되지 않는 기술이었다. 따라서 민간에서는 이런 기술이 있다는 것에 대해 알지도 못했으며, 사실상 기밀 프로젝트나 마찬가지였었다. 하지만 뜻밖의 사고가 일어나면서 GPS에 대한 정보가 풀리게 되었다.


1983년, 존.F.케네디 공항에서 이륙해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소속 007편 보잉 747기가 통상 경로를 벗어나 사할린 섬 인근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가 격추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조종사와 승무원, 탑승객 269명 전원이 사망하는 초유의 민간 항공기 피격 사건이 발생했다. 현재까지도 비행기가 경로를 이탈한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현재까지 종합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당시 민간 항공기에 장착된 관성항법장치가 오류를 일으켰고, 그로 인해 비행기가 코스를 이탈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민간 항공기들은 자체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알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런 비극이 일어났다는 여론이 일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은 당시까지 기밀로 부쳐져 있던 GPS를 일반에게 공개한다는 선언을 한다. 이로서 민간 기업들도 GPS를 활용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덕분에 많은 선박과 항공기들은 위치를 잃고 엉뚱한 곳에 부딪치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GPS는 완전히 공개 된 건 아니었다. 레이건의 선언이 나온 직후에 개발된 GPS의 주파수 신호는 군용과 공개용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1989년부터 1994년까지 약 5년에 걸쳐 위성들이 완전 전개될 때까지 민간에서 제대로 이용하기 힘들었다. 애초에 군용은 암호화가 되어 있어 민간에서 사용하기는 더 힘들었으며, 특히나 군용의 정확도가 더 높았다. 물론 이정도는 선박이나 항공기에는 큰 장애는 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GPS에는 적성국에서의 무분별한 사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민간용에도 특수한 암호화가 걸려 있었다. S.A(Selective Availability)는 문자 그대로 암호화된 GPS 주파수에 차등을 두어 사용하는 기기에서 의도적으로 오차 발생을 크게 만들었다. SA로 인해 발생하는 고의적 오차의 범위는 최소 20미터에서 최대 100미터에 이를 정도였다. 이는 적성국이 민간용 주파수를 무분별하게 이용할 시 전쟁에서 미국이 크게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사용에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도록 조치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GPS의 보급은 거북이 수준으로 느렸으며, 오차가 크기 때문에 측량 용도의 목적에서도 사용하기가 불가능했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말, 클린턴 대통령은 2000년 1월부터 SA를 해제하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이후 GPS의 보급은 엄청난 속도로 퍼지게 되었다. 10년이 지나자, GPS의 보급률은 인터넷과 맞먹는 수준으로 빨라졌으며, 현재는 스마트폰과 함께 현대 사회에 없어서는 안될만큼 중요한 기술이 되어 버렸다.


사실 미국이 GPS를 공개한 것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다. 미국이 GPS 위성을 배치하는데 있어 다수의 위성이 투입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경제적 손실이 천문학적으로 발생했었다. 특히 미국과 소련간의 스타워즈 경쟁으로 인해 미국의 부채가 엄청난 수준인 상태에서 미군은 하루빨리 부담을 덜어내고 싶었다. 실제로 GPS의 미군 내 경쟁자였던 NAVSAT도 1996년 이후로 중단되어 GPS로 통합되었다. 하지만 GPS를 공개하고 민간 시장을 키워낸 다음에 GPS를 민간에 매각시켜 버리면, 미군의 부담은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실제로도 미국 내에서는 GPS 매각에 관한 여론이 종종 나타나곤 한다.


또다른 공개 이유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소련이 붕괴되자 사실상 미국에 대적할 수 있는 강적은 일시적으로 사라졌고, 사실상 미국만이 남은 무주공산의 상태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앞으로 미국에 대해 직접적으로 적대할 수 있는 세력은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사전에 포석을 깔아둘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GPS라는 것이다. 즉 GPS가 가상의 적성국에 보급화된다면 이후 그 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었을 때 미국이 GPS 정보를 차단해 버리면, 그 나라의 국민들과 여러 기업이 겪게 될 혼란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당장 국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수준이 90년대로 후퇴해 버리게 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 세계 각국에서는 GPS를 대체하기 위한 수단을 개발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그 대표주자가 바로 러시아가 최근 개발 완료한 글로나스 프로젝트이다. 글로나스 프로젝트도 냉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소련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공격잠수함을 이용한 탄도 미사일 발사 연구를 하는 중에 새로운 항법 체계 연구를 시작했고, 역시 마찬가지로 위성을 이용한 기술을 연구했는데, 시범 운용 중에 소련이 붕괴되면서 글로나스 프로젝트 역시 사장되고 말았다. 그래서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글로나스는 실패한 GPS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기도 했었다. 그러나 푸틴이 집권한 이후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인다는 계획의 일환으로 GPS를 대체할 수단으로 글로나스 프로젝트가 부활하게 되었고, 2010년대에 이르러 글로나스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상용화에 성공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글로나스에 대한 보급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는 한편, GPS 사용 기기에 대해서는 높은 관세를 매기며 GPS의 보급을 방어하고 있다. 이에 현재 대부분의 러시아 진출 기업들은 글로나스와 GPS를 동시에 운용 가능한 칩셋을 개발하고 있다. 아이폰4S가 바로 그 첫번째 주자. 물론 현재까지도 정확도는 GPS쪽이 더 높으며, 기본 설정도 GPS 우선으로 되어 있다.


다른 곳에서도 위성항법체계 연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단 러시아 다음으로 EU와 일본이 후발 주자로 여기에 뛰어들었으나, 일본은 사실상 예산 문제로 철수했고, EU의 갈릴레오 프로젝트는 현재까지도 시범 단계에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갈릴레오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나서고 있으나 언제쯤 투자에 대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 못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현재 중국과 인도가 그 다음 후발 주자로 나서고 있는데 현재 중국의 베이두(북두) 체계는 GPS, 글로나스 다음으로 상용화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항법 체계로 꼽히고 있으며, 실제로 2012년부터 베이두는 중국 전역과 태평양 일부 지역에 지원이 가능한 상태이다. 어쩌면 갈릴레오 프로젝트보다 더 먼저 완료될 가능성이 높다(...).

GPS의 시각적 이론.#

GPS의 이론적 바탕은 상대성 이론과 도플러 효과에 있다. 이는 위성이 지구의 자전 속도보다 빠르게 회전함으로서 발생하는 시차를 극복한다는 물리학의 뭔가를 얘기하는 듯 하지만, 글쓴이의 물리학 레벨은 바닥을 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간다(...) 다만 기술적 원리는 설명이 가능한데, 기본적으로 위치를 잡아줄 3대의 위성과 1대의 오차 보정 위성, 총 4대가 있으면 위치 결정이 가능하다. 이론상으로 설명하자면, 초등학교에서 삼각형을 만드는 이론에서 조건 중의 하나가 "세 변의 길이를 알고 있다"인데 세 개의 위성을 이용한 삼변측량으로 위치를 구하게 된다. 이 때 4번째 위성의 역할은 각 위성과 수신기가 주고 받는 시간차에서 발생하는 오차를 줄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구와 위성은 서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고,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오차가 발생하는데, 이를 수정해줄 요소로서 4번째 위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GPS의 활용성은 무궁무진하다. 네비게이션으로는 물론이고, 이제는 스마트폰까지 들어갔으며, 군대에서는 일개 보병에서부터 전투기, 군함, 미사일, 심지어 구형 폭탄에까지 GPS를 부착해 값싸고 정밀한 명중률을 보장하는 유도폭탄으로 환골탈태시켰으며, 측량에서는 대규모 장거리 측량의 정밀성을 높여주는데 일조해 지형의 유동 등에 대한 연구에 쓰이고 있다. 또한 인공 위성 등의 위치를 추적하고 설치 위치를 잡아주는데도 GPS가 활용되고 있다.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Global_Positioning_System 

2014년 5월 22일 목요일

스탈린그라드 전투 개요(1)

스탈린그라드의 원래 이름은 차리친(Tsaritsyn)이었다. 16세기 초에 볼가강변의 만곡부를 따라 형성된 작은 마을로, 원래는 남쪽을 지키는 변방 마을이었다. 그러다가 볼가강변에 위치한 특수성으로 인한 군사적 필요성과 하천 운송 등으로 인해 점차 마을이 크게 형성되었으며, 19세기 제정러시아 시절에는 인구 증가 속도가 빨라지며 인구가 10만 명에 육박, 철도가 놓이기도 한다.

이후 적백내전이 발발하자 러시아 남부 지역에서는 차리친을 두고 적군과 백군 양측 사이에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소비에트가 건국되고 난 후, 차리친은 여전히 별 볼일 없는 작은 소도시였으나 스탈린이 집권한 이후인 1925년, 스탈린그라드로 개명되고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거대한 중공업 시설과 철도, 항만 등이 건설되었다. 그 결과 독소전 시점에 스탈린그라드는 인구 50만 명의 중형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도시들과 다르게 스탈린그라드는 볼가강을 따라 선형으로 형성되어 있는 도시이며, 도시는 크게 도시 가운데 있는 102고지, 흔히 마마이 고지라고 부르는 거대한 언덕으로 남북으로 나뉘어 진다. 원래 만들어진 남쪽 구역은 주로 주거지와 행정구역, 구시가지 등이 형성되어 있으며, 북쪽은 중공업시설과 철도역이 집중되어 배치되어 있는 곳이었다.

1942년 초에 독일군이 하르코프를 장악한 시점에는 동쪽에 위치한 전략적 목표는 카프카스 지역과 스탈린그라드 뿐이었다. 따라서 남부에 위치한 독일군의 전략적 목표는 자동적으로 스탈린그라드와 카프카스로 결정되었었다. 이는 히틀러의 아집을 떠나 당시 카프카스의 독일군의 측면을 보호하기 위해선 스탈린그라드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Stalingrad
, P391

2014년 5월 14일 수요일

어버이날 카네이션 대신 사온 허브

어버이날에 남들은 카네이션을 달아주지만, 꽃 키우는 건 질색인데다가 반역의 기운이 풍기는 삽질랜드로서는 그런 대세는 따라갈 수 없으므로 다른 걸 준비했죠.

꽃집에 들러 사려고 보니 앞에 전시된 허브애서 좋은 냄새가 나서 오 천원 주고 사와 봤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허브도 반역의 기운이 있는 건지, 아니면 꽃집에서 향기나는 잡초를 허브라고 속여 판건지.... 엄청 빠르게 자라나더군요.... 


흐음... 뜯어 먹기에는 조금 불안하고... 일단 방향제로 두어야 겠습니다.....

드디어 광고가 붙었다!

근데 왜 광고가 성형외과 광고만 붙었을까... 여행 관광 상품이 올라와도 될 것 같았는데....


결국,
빡쳐서 대시보드에서 민감주제 광고는

제외 시켜 버렸습니다.

2014년 5월 8일 목요일

요즘 자막의 클래스


이것도 ASS자막인데, 무슨 기술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탐나는 기술이건 확실합니다...

저번에도 만든 거 보셨겠지만, 제 기술 수준으로는 거의 노가다 작업 수준으로 자막을 만들고 있고, 그마저도 프레임과 맞지 안아서 가독서이 많이 떨어지는 약점이 있죠.

간신히 태그에 move라는게 있어서 이걸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더니만... 이게 또 속도 조절이 안되는지라 여러모로 이것도 막장이더군요... 현재 가장 좋은 방법은 노가다가 최선...

근데 얘들 기술도 알고보니 노가다면 어쩌지;;;;

추신: 하도 자막 얘기가 많이 나오게 되는 것 같아 그냥 자막 라벨을 만들어 붙입니다.

2014년 5월 7일 수요일

이제 자막 작업이 다 끝나간다...

문제는 이제 1기 1화 끝냈다는게 함정...

Aegisub은 만드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 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뭐, 그런 점 때문에 히다마리 스케치를 작업용으로 선정한 것도 있지만요...

당연한 거지만 배포할 수준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며;;;

원래 자막 제작자 분에게도 양해의 글을 올려야 겠습니다.


뭐, 다 끝나간다고 해봐야 여전히 자막 위치도 새로 잡아줘야 하는 것도 있고,

자막을 실시간으로 움직이게 해야 하는 것도 여전하니, 다 끝난 것도 아닐 겁니다....

실력이 향상되면 그걸로 뭘 할지 아직 정하지도 못했다는게 함정...
나온지 좀 된 애니들 중에서 몇 개 골라서 ASS 자막으로 만들어 볼까...
근데 난 일자리 찾아야 하잖아... 안될거야...

2014년 5월 6일 화요일

결론: 자막 노가다












q보이시는 대로, 프레임 2~3씩 끊어가며 영상에 맞게 자막을 이동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다행히 나름 매끄럽게 자막이 진행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문제는 앞으로 자막 이동할 일이 좀 많을텐데, 용량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나겠습니다.... 어디 자막 자동화 이동 같은거 써 놓은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고... 어디가서 방법을 찾긴 찾든가, 아니면 이렇게 하나하나 노가다를 해야 한다는 거죠;;;;;



자막제작의 고난이도 문제에 봉착....





저 차회예고라는 글씨가 영상의 움직임을 따라 같이 움직일 수 있게 해야 하는데,저의 기술력이 아직 미천한 관계로 그게 되진 않더군요...

그래서 찾아보니,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일이 노가다로 한 프레임당 맞춰서 움직이던가, 아니면 가라오케 기능의 자동화 기능을 이용해서 움직이게 해야 한다는 것 같더군요.

문제는, 자동화 기능의 스크립트를 짜는 방법은 모른다는 것...

2014년 5월 5일 월요일

삽질씨의 2츠 대전사 예고편-스탈린그라드 전투


내츄럴한 느낌을 보이기 위해 삽질랜드의 자필로 작성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연재합니다'ㅅ'




는 훼이크'ㅅ'

바이두가 안돼....

며칠전에 토렌트 오프다운 받으려고 했더니

网络繁忙,请稍候再试
이러면서 안되는데, 지금껏 고쳐지질 않음....



다음날 추가...


여기저기 찾아보니, 오프다운으로 야동이 공유된다고 중국 정부가 철권제재한 모양입니다...

2014년 5월 2일 금요일

히다마리 스케치 자막 작업






















뭐, 자막은 굳이 새로 만들 필요는 없긴 한데, 우분투에서 애니를 보자니 smi보다는 ass나 ssa가 더 잘 맞는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지금까지 1기 1화 절반 정도까지 뽑아 봤는데 나름 재미도 있고, smi보다 더 잘 나옵니다.

문제는... 넷북 성능에 비해 CPU 점유율이라거나 메모리 점유율이 굉장히 크더군요... 영상 재생하면서 작업은 조금 힘듭니다... 대신에 소리에 맞춰서 싱크 작업하고 영상 내의 글씨들은 후순위로 추가하고 있죠...

실제 일본어 실력은 안되는 고로, 현재 가지고 있는 자막파일의 원래 제작자에게 나중에 양해를 구해야 겠습니다. 일단 1화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할테니깐요;;;

2014년 4월 30일 수요일

루분투에서 ftp서버를 간신히 만듦...

루분투에서 애니 한편 다운받으려고 해도 방법이 마땅찮고, 무엇보다도 바이두 클라우드를 돌리기에는 미칠듯한 업/다운로드 속도(100kb 이하/1mb 이하)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현재는 ftp를 이용해서 대리로 처리하는 방법을 고민 중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ftp를 구축해서 파일을 왔다갔다 시키는 방법을 찾았죠.

뭐, ftp 만드는 방법 자체는 인터넷에 널리고 널렸는데, 정작 그걸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은 자세히 나와 있지 않더군요.

보통 ftp는 아이피 주소가 있길 마련인데 대체 호스트 주소는 어떤걸 써야 하는지 알 길이 없더군요. 이상하게 그것만 얘기가 없던 겁니다... 그러다가 사용하는 무선랜의 아이피 주소를 적었는데 이게 되더군요...

이제 내일 ftp로 오가는 파일의 전송 속도만 체크하면 될 듯 싶습니다...

2014년 4월 28일 월요일

음... 원래 연재 중이던 2차대전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군요.

뭐, 앞으로 쓰고 있는 건 언제 완결이 날지 모르겠지만, (일해라 삽질랜드!)

마찬가지로 앞으로 연재를 해야 한다면 이전 블로그에 써놨던 것들도 가져와야 하는 것이 응당 맞겠죠. 그렇게 생각해 놓고 봤을 때, 아무래도 가져오긴 가져와야 할 것 같긴 한데, 이것들도 PDF로 바꿔야 하나가 주된 문제점입니다...

뭐, 바꾸는 것 자체야 문제가 아니겠는데, 그러자면 처음 썼던거랑 최근으로 올수록 쓴 것들간의 격차가 꽤 나는지라, 내용을 전면 수정도 해야 할지 문제가 생기거든요. 아무래도 초창기에는 위키피디아로만 썼었고(지금도 주력으로 쓰고 있긴 하지만.... 거기다 전문 서적이라 할만한 것도 웹에서 공개된 것들 뿐...) 그 내용도 그냥 간결하기만 했으니깐요.

그리고 애초에 처음엔 정치사 부분도 들어 있었는데  쓰다 보니 결국 빠지게 된 것도 있었던지라, 조금 상황이 복잡하긴 합니다. 아무래도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선, 지금 쓰고 있는 내용들이라도 알차게 써야죠 뭐...

2014년 4월 24일 목요일

해경이 빌려갔다는 다이빙벨에 대한 소고

아마 12시간이 지난 것 같습니다. 해경에서 모 대학에서 싸구려 다이빙벨을 빌려갔다는 뉴스가 나왔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다 봤을테니 그거에 대해선 별로 자세히 쓸 말은 없습니다. 아,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애초에 자세히 쓸 말은 없습니다. 애초에 그 기사가 나온 이후로 더 이상 붙은 살은 없으니깐 말이죠.

그런데 엉뚱한데서 살이 많이 붙었습니다. 해경을 욕하는 목소리가 이제는 무슨 역적 모의를 발견한 것 마냥 커졌고, 이종인씨는 거의 예수님과 동급이 되기 직전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 글에서 이종인씨는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괜한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뭣하겠습니까? 단지 오늘 있었던 일만 얘기해도 충분한 글감은 나오니 이종인씨 얘기는 빼겠습니다.

오늘 이슈가 된 뉴스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그 다이빙벨이 대학 시설에서 빌려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더 주목할만한 것은 어디에서도 그 빌려갔다는 다이빙벨을 봤다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항구에는 수백명이 넘는 기자와 시민단체 회원, 유가족, 자원봉사자가 몰려있고, 사고 해역에도 기자들의 카메라가 먹잇감을 찾으려고 번뜩이고, 유가족들까지 배를 타고 돌아다니는데 그게 물 위에 떠 있는 걸, 심지어 끌어 올리기 위한 크레인이 달린 바지선조차 본 사람이 아무도 없죠. 심지어 그거라도 봤으면, "봐라, 이게 증거다"라고 확인도 안된 찌라시라도 올라왔을텐데, 그것조차 없습니다.

최초의 기사 유포자,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순수하고 거짓됨 없는 하나의 팩트만으로 이렇게 큰 파장을 만들 줄도 알고요. 제가 만약 언론사 기자였다면 그 빌려간 다이빙벨을 찾아 돌아다니며 자금 어디에 있고, 무슨 용도로 사용될거다 라고 확인하고 기사 쓸 준비하느라 삽질만 하고 앉아 있을 겁니다.

대중은 참 쉽게 언론에 속아넘어갑니다. 심지어 진실이 적혀 있는데도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쉽게 속아넘어가기도 하죠. 어느 한쪽의 언론에 크게 속아 넘어가 "아 다시는 안 믿을 거야" 하면서도 결국엔 또 속아 넘어가죠. 심지어 반대편에 가서도 속아넘어가죠. 심지어 언론에 속아 넘어갔다는 글을 쓰고 있는 저조차 지금 누군가에게 속아 넘어 가고 있는 걸지도 모를 겁니다.

때문에 양심있는 언론인은 신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손에 들린 자료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해경은 명예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떠드는 어떤 사람들도 해경에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실을 보시기 바랍니다. 대기업 평사원보다도 못한 급료를 받으면서 살아 있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찾기 위해 바닷속으로 뛰어 들고 있는 것도 저 해경들입니다. 조금이라도 도움되는 장비라면 왜 굳이 그들이 마다 하겠습니까? 윗사람들의 자존심 때문에요? 지금  형국에서 언론 입김이 더 쎌까요, 아니면 자기들 자존심 지키기가 더 쎌까요? 억지로 등떠밀려 하는 척이라도 하면 모를까, 왜 온 국민의 눈이 다 쏠리고 대통령까지 언론 눈치 보는 이 상황에서 해경만 자존심 지키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도 해경의 입장에 대해 진지하게 들어보려 하지 않습니다. 홍 모라는 인간여자가 인터뷰로 해경을 욕했을 때도 처음에 아무도 해경의 입장을 들어봐야 한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민간잠수사들이 나서서 변호해 준 뒤에야 물먹은 듯이 조용해졌죠. 이게 지금 한국의 언론이고, 한국의 여론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판단하라는 것은 한쪽 말만 듣고 내 돌대가리의 생각을 정리한 뒤에 판단을 하라는게 아닙니다. 정말 많은 정보를 모은 뒤에 내려도 늦지 않습니다. 왜 반대쪽의 말을 듣기도 전에 결론부터 내리는 것입니까?


2014년 4월 22일 화요일

독일판 버터링 그라처 린게





무게 400그램! 수량 16개! 버터링 200그램 짜리보다 두 배 더 무겁고, 더 크고, 더 많은데 가격차이는 최대 1000원 정도!


내가 이젠 버터링을 사나 봐라....

2014년 4월 17일 목요일

천안함 이후로 드는 생각인데

그 때도 사고 해역에서 실종자 수색에 참여했던 잠수부들이 위험했고, 그 때문에 고 한주호 준위도 안타까운 일을 겪으셨습니다. 이번 여객선 침몰 때도 험한 날씨 때문에 잠수부들이 위험에 처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저는 인명 구조용 무인기에 대한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명 구조는 돈을 벌기도 힘들죠.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사람 목숨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중에서 침몰한 선박 등에서 실종자 수색을 위한 장비는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일단 소형화 하기도 힘들고, 통신과 조류의 영향을 버틸만한 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지상에서의 인명구조용 무인기의 개발은 상당 부분 진척되어 이제는 사람을 수색하는 것이 많이 가능해 졌고, 생필품 조달과 작업 기능도 담당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른 인명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지만, 구조하려는 사람이 진입하기에는 위험한 곳이 너무나도 많은 곳이 사고현장입니다.

더 이상 구조자들이 위험한 상황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다 위험한 일을 겪는 것을 줄일 수 있도록, 그리고 지금 저 바다 어딘가에 살아남아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무인기 개발에 좀 더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인기는 결코 전쟁 병기로만 개발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대신해 위험을 감수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Fire in the hole!




내 손이 작은 건가, 아니면 파인애플이 작은 건가...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ftp를 이용해 아이패드로 파일 전송 중...

루분투에서는 아이패드가 연결되지도 않고, 기존에 웹브라우저에서 와이파이 연결하는 방법은 하나하나 파일을 옮겨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ftp 클라이언트를 사용하면 일일이 노가다 하지 않아도 나름 편하게 파일을 한꺼번에 옮기는게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동영상을 보는데 사용하는 어플은 다이렉트 플레이어인데, 와이파이를 통해 http와 ftp로 파일을 전송할 수 있습니다.

방법은 간단한데,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이용하는 피시와 아이패드의 네트워크가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피시에는 자료 전달이 안되는 통신사 공유기가 붙어 있어서 접속 자체가 차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는 노트북에 네트워크를 생성해서 연결하는 방법을 추천합니다.실제로 저도 집에서 공유기 때문에 컴퓨터와 아이패드가 와이파이로 연결이 되지 않아 AP를 따로 만들어서 연결하고 있습니다. 본래 방구석에서 아이팟이 와이파이가 잘 안터져서 쓰던 방법인데 지금은 여러 모로 도움이 되고 있죠....

아무튼 이것부터 해결하면 나머지는 쉽습니다.제가 지금 사용하느 파일질라를 예로 들자면, 파일질라 클라이언트를 설치한 뒤, 호스트명에 ftp 서버 주소를 써넣기만 하면 연결이 되고, 로컬사이트 메뉴에서 업로드할 파일들을 선택한 뒤 업로드하면 자동으로 파일들이 아이패드로 전송됩니다. 물론 중간에 어플이 꺼지거나 하면 전송은 중단됩니다.

사실 제일 편한건 USB연결되는거죠... 속도도 빠르고 중간에 딴짓해도 되고...


Moscow to Stalingrad 부분 번역(1)

당근 전문 번역하기에는 빡센데다가(...) 미국에서 편지가 날아오는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그냥 필요한 문단이나 페이지 부분만 번역해서 올리는 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이유는 일단 현재 쓰고 있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부분에 대한 자료 수집 목적...

Moscow to Stalingard, p382,
19챕터. 돈 강에서  볼가 강까지(From the Don to the Volga)
"스탈린그라드 서쪽에 적들은 없다"

  8월 1일, 독일 4기갑군은 Tsimlyanskiy와 Remontnaya에서 북동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로부터 이틀 후, Kotelnikovo 인근에서 일부 소련군이 탑승한 열차를 노획한 후, 호트 장군의 독일 4기갑군 소속 분견대는 스탈린그라드의 남동쪽으로 60마일 떨어진 Aksay 강에 도달했다. 이들은 소련 64군 사령관 추이코프 장군이 자신의 야전군과 일부 예비 사단을 떼어내 편성한 스탈린그라드 전선군 소속 남부 집단 부대와 조우했다.
  파울루스 장군이 지휘하는 독일 6군은 차량 연료와 탄약을 재보급 받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Kamensk-Shakhtinskiy에서 대기 중인 OKH 예비 사단 2개가 위치한 11군단 사령부에 지휘소를 차렸다. 4일, 기동부대가 30마일을 이동할 충분한 연료를 얻자, 파울루스는 8일에 칼라치 교두보에 대한 공격을 개시할 것을 명령했다. 그 다음날 OKH는 파울루스가 더 지체하면 소련군이 돈강 너머로 퇴각할 것을 히틀러가 우려하고 있다면서 공격 날짜를 앞당길 것을 요청했다.
  8월 1일 밤, 예레멘코 장군은 4충격군을 지휘할 때 생긴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2월부터 병원에 있다가 크레믈린으로 호출되었다.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마쳤다는 것을 확인한 후 스탈린은 예레멘코에게 스탈린그라드 전선군을 스탈린그라드 전선군과 남동전선군 둘로 나누어 예레멘코가 그 두 전선군 중 하나를 골라 맡으라는 말을 했다. 다음날 참모회의에서 돈-볼가 지역에 대한 상황 조사에서 예레멘코는 두 전선군 사이의 경계를 칼라치에서 스탈린그라드 중앙을 통해 동쪽으로 흐르는 Tsaritsa 강 축선으로 놓았다. 그날 밤 크레믈린에서 예레멘코는 두 전선군 중 하나를 도시 내에 배치시키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요청했지만 스탈린과 참모총장인 바실리예프스키 장군은 남쪽과 북쪽에서 공격해 들어가야 한다며 말했고, 예레멘코는 그들이 결정을 재고할 뜻이 없음을 느꼈다. 면담 후 스탈린은 예레멘코를 Tsaritsa 남쪽 구역을 담당하는 남동전선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https://archive.org/details/MoscowToStalingradDecisionInTheEast

루분투에서 동영상 인코딩 하기...

한 몇 날 몇 일을 삽질하고  질문한 끝에 드디어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처음엔 arista라는 걸로 했었는데 이상하게 전혀 작동이 안되더군요. 그래서 이건 탈락...

그 이후 온갖 프로그램들을 설치해 보고 용을 썼지만 안되더군요.

심지어 ffmpeg는 터미널에서 명령어 노가다만 하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 명령어 노가다도 제대로 안되어서 망....

결국 현재에 와서는 ffmpeg의 GUI라는 WinFF를 받아서 쓰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평범한 동영상 인코더 같이 보이는데 실상은 그냥 터미널로 돌릴 영상 파일의 명령어 노가다를 단축키화 한 거나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이거라도 있어 다행인거죠...

아, 근데 ETA가 표시가 안되고, 거기에 자막 합치기나 완료 후 종료와 같은 작업이 실행 불가능하다는게 최대의 함정.... 그리고 확실하진 않지만 연속 작업 불가능....

우분투로 행복하긴 아직 먼거 같습니다...

2014년 4월 12일 토요일

루분투 3일차

오늘은 그래도 나름 성과가 조금이나마 있어 다행입니다.

원격조작은 결국 실패했지만 그래도 버추얼박스 설치 후 윈도우도 잘 깔았고, 윈도우에서 작동하던 여러가지들도 작동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동영상 인코딩이 가능한지 시도해 봤지만 신통치 않더군요. 다른 방법을 모색해 봐야 겠습니다. 가상 윈도우에다가 인코더를 깔아봤지만 억시 속도도 별로 좋지 못하고 정말 진퇴양난입니다.

2014년 4월 11일 금요일

루분투(lubuntu)에서 VNC 가능하게 하기

지금 버추얼박스에 윈XP 까는 작업 중인데, 그 틈에 아이패드에 깔아놓은 포켓클라우드가 쓸모 없게 되지 않도록 최대한 구글질을 해본 결과 방법이 있긴 있더라구요.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이 작업을 하기 위해선 데스크톱 공유 설정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루분투는 우분투와 달리 이 기능이 기본적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따로 설치를 해줘야 하는데 그 과정부터 먼저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vino 설치
vino는 루분투에서 사용하는 데스크톱 공유 설정기 패키지 이름인데, 터미널을 연 뒤 다음 명령어를 입력합니다.

$ sudo apt-get install openssh-server vino -y

이렇게 해 준 다음 설치가 완료되었으면 데스크톱 공유 설정을 열어야 하는데, 이게 바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연속으로 다음 명령어를 넣어 줍니다.

vino-preferences

이러면 데스크톱 공유 설정(Desktop Sharing preferences)가 열립니다.

이제 두 가지를 체크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유(Sharing) 메뉴 바로 아래쪽에
다른 사용자가 데스크톱을 볼 수 있도록 합니다.(Allow other users to view your desktop)
다른 사용자가 데스크톱을 제어할 수 있음.(Allow other users to control your desktop)
이라고 쓰여진 체크박스가 있습니다. 이걸 체크한 뒤 비밀번호를 입력합니다.(비밀번호는 선택사항)

여기서 할 일은 이제 끝입니다.

2. 포켓클라우드(pocketcloud)
포켓클라우드에 접속한 뒤 +모양을 한 게 있습니다. 선택하면 연결 유형을 묻는데 자동(Auto) 연결 할 건지 수동(Manu) 연결할 건지 묻습니다. 여기선 수동(Manu)으로 연결합니다.

그럼 RPD로 연결할 건지, VNC로 연결할 건지, VMware View로 연결할 건지 묻는데 여기서는 VNC로 연결합니다.

그럼 이제 연결 설정이 나오는데 전 지금 루분트를 쓰고 있는 관계로 OS는 리눅스로 해야 겠으나... 그건 선택지에 없고 윈도우(Window)와 맥(Mac),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여기서는 윈도우(Window)를 선택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별명(Nickname)을 설정하는데 아무거나 정해도 됩니다.

호스트는 자기가 사용하는 IP주소를 입력해야 하는데 이 때는 Wifi 정보(information)을 열어보면 Wifi 주소로 192.168.XX.XX가 적혀 있습니다. 이걸 적고 아까 위에서 설정한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저장을 누르면 다 끝납니다.

 자 이제 저도 되었는지 확인해 보러 가 보겠습니다...

루분투 2일차

ㅆㅂ!

내 마음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어!

하루 종일, 정말 하루 잡고 12시간 내내 루분투만 잡고 있었는데도 성과는 정말, 정말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배운 거라고는

"iOS7은 현재 락 걸려서 리눅스에서 연결 못해염"(무한 신뢰질)

이거 하나 뿐인 것 같습니다.

그나마 버추얼 박스라도 설치하면 나아질 줄 알았더니 버추얼 박스는 설치되어도 OS는 아무것도 설치도 안되고 디스크만 축내고 있습니다.

오늘 한 거요? 저 위의 삽질들만 12시간 째 하고 있다가 아이패드랑 컴퓨터 간신히 와이파이 연결시켜서 애니 2화 옮긴거 외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앞으로 열 몇 편을 더 옮겨야 하는데, 와이파이가 또 잡힐지 미지수이기까지 하고요.

바이두는 아예 설치하는 방법을 아는 곳이 전무하고, 남은 건 버추얼 박스 뿐인데, 박스조차 문제를 일으키고 있고, 아주 개판 같은 상황입니다.

2014년 4월 9일 수요일

루분투 1일차... 연속적 삽질....

하루 종일 엄청난 삽질의 연속이었다고... 압축할 수 있는 하루였습니다.

우선 아이튠즈부터 해결한답시고 와인 깔고 플레이온리눅스 깔고 한참 헤매다가 겨우 다 해결한 다음에 아이튠즈를 까는데 여기서도 어김없이 한참 헤매는 바람에 수시간의 삽질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아이튠즈를 깔았더니만....

이번에는 한글이 깨져 나와서 도저히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더군요....

그래서 다시 지우고 영어로 깔았는데 이번에 더 큰 문제가 제 토사구패드가 연결이 안되더랍니다...

지금 엄청난 고민거리가 하나 생겨 버렸습니다...


일단 그 문제는 넘기기로 하고 이번에는 바이두 클라우드를 설치해야 겠다고 생각해서 바이두를 설치할 작업을 했습니다. 이번에도 기본적으로 좀 헤맨다음에 바이두를 설치하려고 하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바이두가 말썽을 부리더군요.

바이두 클라우드가 일단 다운이 안되는 문제가 발생했고 그 다음에 다른 외부 계정에서 클라이언트를 끌어 왔으나 이것도 오류가 있다면서 설치가 아예 시작부터 막혀 버리고... 이건 하다가 돌아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아무튼 고민이 또 늘어나 버렸습니다. 
 투

지금까지 그나마 극복이 된 건 드롭박스 뿐이네요...

지금 넷북에다가 루분투 깔았는데...

개 어려움요'ㅅ'

아이튠즈 문제부터 해결해야 겠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름;;;;

2014년 4월 5일 토요일

Java 연습용 Hello World



자꾸 까먹기는 합니다만, 꾸준히 반복해야 겠습니다.  나중에 뭘 만들지는 아직 모르지만....

2014년 4월 3일 목요일

2014년 4월 1일 화요일

던전 오브 삽질랜드의 근황

 던전 오브 삽질랜드는 지상 가옥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면 나타난다. 던전 오브 삽질랜드는 두 개의 지하로 구분되며 지하 1층은 임시 숙소 및 작업장, 창고로 쓰며, 지하 2층은 농작물 재배와 가축 사육, 벌채 등의 목적에서 쓰인다.


지하 1, 2층의 전경. 동물들은 지하 2층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 



지하 3층부터는 본격적인 채굴과 몹들을 수용할 수 있는 수용시설을 갖추고 있다. 수용실은 장방형 형태로 외부에서 사각 없이 볼 수 있게 삼각형 형태로 입구가 만들어져 있다.



구글 플러스는 아무래도 한국과는 맞지 않는 경향이 크죠...

생각보다 구글은 네이버로 했을 때보다 간단한 듯 싶으면서 복잡하네요.

영 모르는 것도 여전히 많고요. 뭣보다 아이패드에선 구글 플러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나 봅니다.

2014년 3월 31일 월요일

지하 동물농장

지하 녹지화도 거의 끝나가고, 좀만 더 하면 이제 지하 1층 전체가 전부 녹지화 될 것입니다. 한쪽 구석에 울타리 치고 지상에서 동물들 유괴해 와서 사육하고 있습니다'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