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누진세 크리를 두 달 연속으로 맞은 관계로 통장 잔고가 홀라당 날아갈 뻔 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저녁에 계량기함에서 그날 사용한 전기량 확인하고 전기 줄이려고 최대한 발버둥 치고 있는 중입니다.
ㅆㅂ 누진세 꺼져! 이 ㅆㅂ 누진세 때문에 데탑도 마음놓고 킬 수가 없잖아!
2016년 8월 29일 월요일
다시 블로그 좀 돌려야 겠네요
그동안 블로그들을 돌보지 않아서 개판일까봐 걱정이었는데 다행히도 별 일 없었네요.
요즘에 쓸만한 정보를 구하기가 어려운데 괜찮을진 잘 모르겠습니다. 뭐, 노력하면 어떻게든 되겠죠.
2015년 11월 22일 일요일
다시 만들어낸 녹차 초콜릿
그것은...
휘핑크림 125ml와 화이트 커버취 400g, 녹차가루 10g, 의아함 10g, 카카오버터 200g, ROYCE 맛이 안나 빡침 50g, 카카오 매스 100g, 녹차가루 10g을 넣고 만든 빡침의 초콜릿...
달고 부드러워서 이제 어지간한 1000원짜리 초콜릿은 쳐다보지도 못할 것 같네요...
초콜릿 레시피나 연구해 볼까....
2015년 10월 24일 토요일
2015년 4월 3일 금요일
지도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을 글로 쓰긴 어렵습니다.
그동안 글을 써도 많아야 5페이지 분량이었는데 지도에 관련된 역사를 통합해서 글을 쓰려고 하니 이게 어지간 해서는 상당히 많은 양을 써야하는데 그 첫줄부터 잡기가 힘들군요. 뭐랄까, 개념은 잡았는데 그걸 구체화 하기에는 아직 역량이 모자른가 봅니다. 거기다 딱히 눈에 띄는 자료도 많지가 않고요. 어지간히 우리 주변에는 아직 지리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연구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지리덕후라는 사람들도 어지간 해선 그냥 뭐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 아는 것 정도로 지리덕후라고 부르지, 아직은 뭐랄까, 전문적인 고등 교육에서는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뭐, 사실 외국에서도 지리학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는 많이 부족합니다. 지리학이라는게 그냥 땅이름만 외우면 되는게 아닌것도 있는지라 더 어려운 점이 많죠. 아마 현재에 지리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그냥 사회, 지리, 역사 뿐만 아니라 지구과학, 전자, 정보, 통신, 수학, 천문학 등 이과 과목까지 다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그만큼 복합 학문인지라 체계적인 배움은 가장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사실 외국에서도 지리학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는 많이 부족합니다. 지리학이라는게 그냥 땅이름만 외우면 되는게 아닌것도 있는지라 더 어려운 점이 많죠. 아마 현재에 지리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그냥 사회, 지리, 역사 뿐만 아니라 지구과학, 전자, 정보, 통신, 수학, 천문학 등 이과 과목까지 다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그만큼 복합 학문인지라 체계적인 배움은 가장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5년 3월 14일 토요일
다들 내가 블로그를 포기한 줄 알고 있지....
하지만 그렇게 보였다면 그건 페이크였을지도?!
실제로는 일다니면서 각종 공부를 하느라 제대로 뭘 쓸 시간이나 책을 볼 시간도 없어서였죠.... 그리고 약 3년 가까이 미뤘던 게임에 대한 열망을 이제서야 분출'ㅅ'
어쌔신크리드 시리즈 하는데 동기화 작업하면서 이제 어크3 DLC 하고 있다고 하면 꽤 늦게 시작했다고들 하죠......
어쨌든, 그 와중에도 색다른 걸 시도해 보려고 이것저것 만져보고 있습니다. 다음엔 뭘 떨굴지 나도 모름 ㅋ
실제로는 일다니면서 각종 공부를 하느라 제대로 뭘 쓸 시간이나 책을 볼 시간도 없어서였죠.... 그리고 약 3년 가까이 미뤘던 게임에 대한 열망을 이제서야 분출'ㅅ'
어쌔신크리드 시리즈 하는데 동기화 작업하면서 이제 어크3 DLC 하고 있다고 하면 꽤 늦게 시작했다고들 하죠......
어쨌든, 그 와중에도 색다른 걸 시도해 보려고 이것저것 만져보고 있습니다. 다음엔 뭘 떨굴지 나도 모름 ㅋ
2014년 9월 27일 토요일
화면이 나간 넷북에 centOS 서버를 설치함
901 옹께서 눈이 침침해 지셔서 랲탑으로의 제 기능을 사실상 상실하셨기 때문에 이제 여기다가 서버를 박아넣고 쓸까 생각 중입니다. 마침 네트워크 공부 중이기 때문에 일단 리눅스 서버 중에서 제일로 군림하시는 CentOS를 깔고 적당히 배우는 중. 그런데 역시나 리눅스인지라 처음 깔고 잘못 설정해서 재설치, 만지다가 오류나서 재설치, 그럭저럭 하는가 싶더니 또 오류. 그래서 세번째 재설치를 한 지금 일단 기초적으로 transmission과 ftp는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할 것은 많이 남았다는 거....
근데 화면이 안보이는데 어떻게 했냐고요? 그야 모니터를 연결했으니깐요'ㅅ'b 깔고 난 뒤에는 SSH로 접속해서 CLI로 서버 만지고요'ㅅ'
근데 학원에서 네트워크만 배우는지라 프로그래밍을 할 줄 모름 ㅋ'ㅅ'
근데 화면이 안보이는데 어떻게 했냐고요? 그야 모니터를 연결했으니깐요'ㅅ'b 깔고 난 뒤에는 SSH로 접속해서 CLI로 서버 만지고요'ㅅ'
근데 학원에서 네트워크만 배우는지라 프로그래밍을 할 줄 모름 ㅋ'ㅅ'
2014년 9월 10일 수요일
남의 역사관과 사상을 운운하기 전에 기초적인 역사는 공부하고 합시다
최근에 보니 류관순 열사가 고등학교 역사 검정 교과서에서 삭제되었다는 보도가 일부 매체를 통해 나왔습니다. 그 언론에서 보도한 출판사의 말은 "이미 배운거기 때문에 삭제한거다"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갑자기 그 출판사는 좌익 친일 출판사로 찍혔습니다. 단지 류관순 열사를 내용에서 뺐다는 이유만으로요.
저는 그 출판사의 교과서를 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태가 이 정도까지 왔으면 그래도 후속 기사라도 나왔을텐데 출판사에서는 후속 보도를 내보내지 않았죠. 자칫 잘못하면 회사 문 닫아야 할판인데 누군들 변명이든 뭐든 해야 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겠죠.
그러다가 이 출판사의 변명 아닌 변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897552476924888&set=a.408536285826512.112769.100000104334973&type=1&permPage=1
요컨대, 이미 중학교 과정에서 배운 내용인데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똑같은 내용을 왜 또 배울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내용을 언론에서는 앞에를 싹 짤라먹고 뒷부분만 보도한 것이었죠.
이 내용에 대해 누군가가 이런 딴지를 걸더군요. 그런 식이면 이순신은 중학교 때 배웠으니 고등학교에서 삭제해야 하냐고요.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교육적으로 생각할 때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중학교 교육 과정과 고등학교 교육 과정은 다릅니다. 초등학교에서 1 더하기 1을 배웠다고 그걸 고등학교에서 또 배워야 할까요? 초등학교에서 배운 A,B,C,D를 고등학교 가서 다시 해야 할까요? 실상 교육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때 류관순 열사는 그 1 더하기 1수준의 상식입니다. 이순신 장군도 따지고 보면 크게 다를 것도 없고요.
흔히 우리가 아는 역사 인물에 대해 배우는 것을 전기물적 교육 방식이라 합니다. 즉 사회에 대한 연구나 복잡한 내용보다 인물 위주로 기초 역사를 익힌다는 것이죠. 이게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초등학생들한테 복잡하고 어려운 역사 용어를 알려 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깐요.
다만 전기물적인 역사 교육에도 단점이 있는데 누군가를 띄워주기 위해 주변 인물들이 악인이 되거나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모든 인물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로인해 이야기를 구성하다보면 그냥 반대 입장이었던 사람이 도저히 쉴드 쳐주기도 어려운 악당 수준으로 몰리기까지 하죠. 거기에 요즘에는 재평가라는 이름으로 쉴드 쳐주기도 어려운 부분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미화까지 해서 알려주기도 하죠. 대표적으로 명성황후 정도가 있겠군요.
그래서 이런 교육 방법도 미국에서는 초등학교까지만 알려주고 맙니다. 그것도 여러 사람 가르치는게 아니라 몇 사람 정도만 하고 마는 식으로 끝나고 말죠. 미국도 이런데 한국에서는 그 교육을 중학생이 되어서도 하고 있죠. 수준 차이가 어디서부터 나오게 되는지 알만한 일입니다.
고등학교 과정은 초중등학교 교육과는 엄연히 차이가 커야 합니다. 인물 신변 잡기나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사회상과 유물, 문화, 정치 등에 대한 이해를 키워야 합니다. 그것만 해도 벅찬데 중학교 때 배우던 류관순을 또 배워야 한다? 이건 문맹은 아니지만 사람 문맹으로 만드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교육 방식을 마치 정형화된 교육 모델인 것처럼 생각하기까지 하죠.
이런 전기물적 형식의 교육을 고등학교까지 배우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 학생들은 초등학교 수준의 가치관을 그대로 역사라고 배우겠죠. 한마디로 나쁜 놈은 변명할 여지 없이 나쁜 놈인거고 주인공인 위인을 괴롭힌 놈이 되는 거죠. 그리고 패장들은 그냥 패장이고 항상 승리한 장군들만 위대하다고 하겠죠. 소위 영웅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영웅주의 교육을 시행한 나라는 분명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역사적으로 유명한 국가와 집단이 이를 시행했고, 많은 영웅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바로 나치 독일, 일제, 북한이죠. 네, 여러분은 지금 앞에 나열한 국가들이 했던 교육 방식을 답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옳다고 듣고 계신 겁니다. 이 국가들은 몇몇 전쟁 영웅들과 지도자들을 우상화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죠. 왜 이래야 했나, 왜 이런 상황에 빠졌었나 하는 불리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채 영웅들의 위대함만 가르쳤죠. 어디서 많이 보이는 방법이지 않나요? 바로 지금 학생들이 배우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교육인 것입니다.
류관순은 분명 주요 독립운동가들 중의 한 명입니다. 하지만 류관순이 3.1운동을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과연 류관순을 뺐다고 3.1운동의 정신이 훼손되었다던가요? 훼손되었다고 한다면 3.1운동 자체가 없는지 따져야지 3.1운동에 속하는 인물인 류관순이 빠졌다고 그게 친일, 종북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인가요? 민족대표 33인은 없답니까? 3.1운동을 부정하던가요? 소요, 폭동이라고 적어놨던가요?
저는 3.1운동에 대해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류관순을 뺀다고 그걸 친일이라 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3.1운동 자체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분량입니다. 2.8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그외 기타 지방에서 발생한 다양한 독립 운동과 이에 동조한 해외 만세 시위 등도 있습니다. 하지만 1년 동안 배워야 할 양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쓰여져야 하는지는 출판사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두 번 중복으로 류관순을 배워야 한다면 다른 독립운동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결국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역사에 무지한 대중의 우매함 때문이겠죠. 위의 이순신을 언급하며 딴지를 걸던 사람도 결국 제가 사실만 가지고 따지니 이렇게 결론 지어 버리더군요. '견해차이'라고요. 과연 공부만 제대로 했었다면 이게 견해차이로만 끝났을 일이었을까요?
무지가 죄는 아니죠. 하지만 모르면서 남의 말만 듣고는 결론을 내린 뒤 더 알아보지도 않고 까기 바쁜 것은 엄연히 도덕적인 죄악입니다.
역사는 여러분이 고등학교까지 배우고, 그냥 인터넷이나 사극만 보는 것 정도로 지식을 다 얻기에는 방대하고 복잡한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기초적인 지식에 대해 좀 알아보고, 그걸로도 부족하다면 타인의 역사관에 대해 까기보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먼저 생각부터 해보고 자신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지식을 짜맞춘 뒤 남의 역사관에 대해 운운하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모른채 까기만 바쁜 것은 결국 자신이 역사에 무지하다는 것만 광고하는 꼴이며, 결국 자기는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학생들에게만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꼰대짓이나 일삼는 거나 다를바가 없습니다. 어른은 학생들의 미래이자 거울입니다. 어른이 제대로 배울 자세도 갖지 않은채 학생들보고 공부나 하라고 한다면 말로 백날 역사 교육 강화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그리고 놀랍게도 갑자기 그 출판사는 좌익 친일 출판사로 찍혔습니다. 단지 류관순 열사를 내용에서 뺐다는 이유만으로요.
저는 그 출판사의 교과서를 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태가 이 정도까지 왔으면 그래도 후속 기사라도 나왔을텐데 출판사에서는 후속 보도를 내보내지 않았죠. 자칫 잘못하면 회사 문 닫아야 할판인데 누군들 변명이든 뭐든 해야 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겠죠.
그러다가 이 출판사의 변명 아닌 변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897552476924888&set=a.408536285826512.112769.100000104334973&type=1&permPage=1
요컨대, 이미 중학교 과정에서 배운 내용인데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똑같은 내용을 왜 또 배울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내용을 언론에서는 앞에를 싹 짤라먹고 뒷부분만 보도한 것이었죠.
이 내용에 대해 누군가가 이런 딴지를 걸더군요. 그런 식이면 이순신은 중학교 때 배웠으니 고등학교에서 삭제해야 하냐고요.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교육적으로 생각할 때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중학교 교육 과정과 고등학교 교육 과정은 다릅니다. 초등학교에서 1 더하기 1을 배웠다고 그걸 고등학교에서 또 배워야 할까요? 초등학교에서 배운 A,B,C,D를 고등학교 가서 다시 해야 할까요? 실상 교육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때 류관순 열사는 그 1 더하기 1수준의 상식입니다. 이순신 장군도 따지고 보면 크게 다를 것도 없고요.
흔히 우리가 아는 역사 인물에 대해 배우는 것을 전기물적 교육 방식이라 합니다. 즉 사회에 대한 연구나 복잡한 내용보다 인물 위주로 기초 역사를 익힌다는 것이죠. 이게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초등학생들한테 복잡하고 어려운 역사 용어를 알려 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깐요.
다만 전기물적인 역사 교육에도 단점이 있는데 누군가를 띄워주기 위해 주변 인물들이 악인이 되거나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모든 인물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로인해 이야기를 구성하다보면 그냥 반대 입장이었던 사람이 도저히 쉴드 쳐주기도 어려운 악당 수준으로 몰리기까지 하죠. 거기에 요즘에는 재평가라는 이름으로 쉴드 쳐주기도 어려운 부분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미화까지 해서 알려주기도 하죠. 대표적으로 명성황후 정도가 있겠군요.
그래서 이런 교육 방법도 미국에서는 초등학교까지만 알려주고 맙니다. 그것도 여러 사람 가르치는게 아니라 몇 사람 정도만 하고 마는 식으로 끝나고 말죠. 미국도 이런데 한국에서는 그 교육을 중학생이 되어서도 하고 있죠. 수준 차이가 어디서부터 나오게 되는지 알만한 일입니다.
고등학교 과정은 초중등학교 교육과는 엄연히 차이가 커야 합니다. 인물 신변 잡기나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사회상과 유물, 문화, 정치 등에 대한 이해를 키워야 합니다. 그것만 해도 벅찬데 중학교 때 배우던 류관순을 또 배워야 한다? 이건 문맹은 아니지만 사람 문맹으로 만드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교육 방식을 마치 정형화된 교육 모델인 것처럼 생각하기까지 하죠.
이런 전기물적 형식의 교육을 고등학교까지 배우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 학생들은 초등학교 수준의 가치관을 그대로 역사라고 배우겠죠. 한마디로 나쁜 놈은 변명할 여지 없이 나쁜 놈인거고 주인공인 위인을 괴롭힌 놈이 되는 거죠. 그리고 패장들은 그냥 패장이고 항상 승리한 장군들만 위대하다고 하겠죠. 소위 영웅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영웅주의 교육을 시행한 나라는 분명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역사적으로 유명한 국가와 집단이 이를 시행했고, 많은 영웅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바로 나치 독일, 일제, 북한이죠. 네, 여러분은 지금 앞에 나열한 국가들이 했던 교육 방식을 답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옳다고 듣고 계신 겁니다. 이 국가들은 몇몇 전쟁 영웅들과 지도자들을 우상화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죠. 왜 이래야 했나, 왜 이런 상황에 빠졌었나 하는 불리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채 영웅들의 위대함만 가르쳤죠. 어디서 많이 보이는 방법이지 않나요? 바로 지금 학생들이 배우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교육인 것입니다.
류관순은 분명 주요 독립운동가들 중의 한 명입니다. 하지만 류관순이 3.1운동을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과연 류관순을 뺐다고 3.1운동의 정신이 훼손되었다던가요? 훼손되었다고 한다면 3.1운동 자체가 없는지 따져야지 3.1운동에 속하는 인물인 류관순이 빠졌다고 그게 친일, 종북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인가요? 민족대표 33인은 없답니까? 3.1운동을 부정하던가요? 소요, 폭동이라고 적어놨던가요?
저는 3.1운동에 대해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류관순을 뺀다고 그걸 친일이라 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3.1운동 자체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분량입니다. 2.8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그외 기타 지방에서 발생한 다양한 독립 운동과 이에 동조한 해외 만세 시위 등도 있습니다. 하지만 1년 동안 배워야 할 양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쓰여져야 하는지는 출판사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두 번 중복으로 류관순을 배워야 한다면 다른 독립운동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결국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역사에 무지한 대중의 우매함 때문이겠죠. 위의 이순신을 언급하며 딴지를 걸던 사람도 결국 제가 사실만 가지고 따지니 이렇게 결론 지어 버리더군요. '견해차이'라고요. 과연 공부만 제대로 했었다면 이게 견해차이로만 끝났을 일이었을까요?
무지가 죄는 아니죠. 하지만 모르면서 남의 말만 듣고는 결론을 내린 뒤 더 알아보지도 않고 까기 바쁜 것은 엄연히 도덕적인 죄악입니다.
역사는 여러분이 고등학교까지 배우고, 그냥 인터넷이나 사극만 보는 것 정도로 지식을 다 얻기에는 방대하고 복잡한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기초적인 지식에 대해 좀 알아보고, 그걸로도 부족하다면 타인의 역사관에 대해 까기보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먼저 생각부터 해보고 자신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지식을 짜맞춘 뒤 남의 역사관에 대해 운운하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모른채 까기만 바쁜 것은 결국 자신이 역사에 무지하다는 것만 광고하는 꼴이며, 결국 자기는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학생들에게만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꼰대짓이나 일삼는 거나 다를바가 없습니다. 어른은 학생들의 미래이자 거울입니다. 어른이 제대로 배울 자세도 갖지 않은채 학생들보고 공부나 하라고 한다면 말로 백날 역사 교육 강화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2014년 8월 24일 일요일
부품을 모아 만든 데탑'ㅅ'b
메인보드:ECS Z77H2-A3
CPU: 인텔 아이비브릿지 팬티엄 G2130
RAM: DDR3 RAM 4GB
SSD: ADATA-PRO SP900 128GB
그외 파워 및 케이스는 집에 원래 있던 것으로'ㅅ'
??: 어? 그래픽카드는 없는데요?
삽질랜드: 전기세 때문에 안 샀다.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핳하하하하하하하핳하ㅏㅎ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하핳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하하하하하하하하하ㅏㅎ하하하하하하하하하!
CPU: 인텔 아이비브릿지 팬티엄 G2130
RAM: DDR3 RAM 4GB
SSD: ADATA-PRO SP900 128GB
그외 파워 및 케이스는 집에 원래 있던 것으로'ㅅ'
??: 어? 그래픽카드는 없는데요?
삽질랜드: 전기세 때문에 안 샀다.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핳하하하하하하하핳하ㅏㅎ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하핳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하하하하하하하하하ㅏㅎ하하하하하하하하하!
2014년 7월 27일 일요일
2014년 7월 9일 수요일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살짝 미루고...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Aegisub 강좌는 저도 빨리 마무리 짓고 싶으나 최근들어 넷북의 문제로 인해 화면이 하얘지는 현상이 발생해 간단한 작업을 하는데도 불상사가 생기고 있습니다. 일단 지도와 자막 제작을 하는 작업은 좀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월급 받게 되면 지금보다 좋은 노트북...? 데탑? 어? 뭘로 사지?!?!
아무튼 여유가 있을 때까지는 좀 기다리서야 할 것 같네요. 그래서 지금 새로운 글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지도와 관련된 내용으로 준비 중인데 아직 컨셉도 제대로 잡지 못한 지라 어찌 될진....
2014년 7월 4일 금요일
이것저것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죄송합니다;;;;
요즘에 직장을 다니면서 글을 쓰려니 귀찮은 건 물론이고 피곤하고, 날도 더워서 영 의욕까지 안 서네요;;;
물론 조만간 쓰기 시작할 겁니다. 그 때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소재를 모으고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다. 포텐 터지면 포풍같이 쏟아낼 테니 기대하시길!
물론 조만간 쓰기 시작할 겁니다. 그 때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소재를 모으고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다. 포텐 터지면 포풍같이 쏟아낼 테니 기대하시길!
2014년 6월 22일 일요일
2014년 6월 5일 목요일
2014년 6월 4일 수요일
콜롬버스의 서회 항해를 반대한 이유는 지구가 편평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역사책을 보면 콜롬버스의 서회항로를 통한 인도로의 항해를 포르투갈 왕이나 스페인 국왕 등이 반대하면서 그 이유를 "지구는 편평하니 서쪽으로 가면 떨어져 죽는거 아님? 위험하니 투자 ㄴㄴ"라고 해서 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이 주장은 당대 사람들의 과학 지식에 대한 오해이다. 오히려 당시에 지구가 편평하지 않고 둥글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그것도 1천 년 전부터 말이다.
사실, 지구가 편평하다는 생각은 천문학이 발전하기 이전부터는 보편적인 생각이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고차원의 수학과 과학은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고, 전승되는 이야기에 근거해서 지구가 네모 편평하다고만 생각했다. 당시의 세계 지도라는 것을 보면 지구 밖은 매우 위험한 세상으로 그려져 있거나 아니면 매우 양심적으로(...) 자기가 아는 곳까지만 그려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지구가 둥글 것이다라고 깨달은 학자들은 많았고, 많은 이들이 여행기나 관련 자료에 이에 대한 증거를 썼다. 그리고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밤에 밝게 빛나는 달의 일부분이 어두워지는 현상이 사실은 태양빛을 반사해서 반짝이던 달에 그림자가 져서 그런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그림자는 바로 달과 태양 사이를 가리고 있는 지구의 그림자라는 것까지 깨닫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증거를 시작으로 그리스의 수학자들은 지구가 둥글다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리스 수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하기에 이르렀다.
시에네(지금의 아스완)의 우물에 하지날 태양빛이 바닥까지 비치는 일이 있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이 이야기를 듣고 비슷한 시기, 자신이 살고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우물은 어떤지 살펴봤다. 그 결과 같은 상황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우물 바닥에는 햇빛이 비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결과 에라토스테네스는 태양이 시에네의 우물 바닥을 비추던 시점에 태양의 위치는 수직이라는 것을 파악했고, 동시간 대의 알렉산드리아는 거기서 조금 치우친 위치에 있기 때문에 태양빛이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가 구형이며, 그렇기 때문에 똑같이 내리는 햇빛이 동일한 위치에 내리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지구의 크기를 계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계산을 실시함으로써 그것이 옳다는 것을 증명했다. 단, 에라토스테네스는 당시의 한계로 인해 가정에서 몇 가지 부분이 틀렸고,(가령 지구는 완벽한 구형이 아니다) 그로 인해 계산 방법에 따라 오차는 실제와 2%(현재의 미터법을 이용한 자의적 해석 기준)에서 20%까지 나타난다.
어쨌든,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로마와 아랍, 이집트 등으로 퍼져 나갔고, 그 후계자들은 이런 사실을 잘 이어 나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가 편평하다는 주장은 계속되었다. 물론 그것은 압도적인 수준이 아니었고, 종교가 과학을 찍어누르던 시대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냥 가벼운 입씨름 정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적어도 콜롬버스 시대에는 지리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 지던 시점이었고, 적어도 콜롬버스를 제외하더라도 왕실의 지도학자들이라면 확인은 안되지만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 쯤은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 국왕과 스페인 국왕 등이 투자를 거절하고 외면했던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콜롬버스는 자기 나름대로 지구가 둥글다고 가정하고 지구의 크기를 계산해 봤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했다. 콜롬버스는 자신의 가정과 계산의 조건들 중에서 몇가지 중요한 부분들을 실수로 놓치고 말았다. 그 계산의 결과 콜롬버스는 지구의 둘레를 2만 5천 킬로미터라고 계산해 버리는 중차대한 실수를 저질르고 말았다. 이 실수가 얼마나 큰거냐면, 실제 지구의 둘레는 약 4만 킬로미터이다. 즉, 콜롬버스는 계산 중 태평양과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을 싹 지워버리고 계산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서는 북서부 아프리카의 카나리 제도와 일본(지팡구)의 거리가 고작 3,700킬로미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물론 실제는 그것의 열배가 넘는 거리였으며, 콜롬버스의 계산에 따른 위치에는 바다만 있었을 뿐이었다....
자기 계산에 이렇게 나오니 콜롬버스는 당연히 서쪽으로 가면 지금보다 덜 힘들이고 인도까지 갈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궁중의 학자들은 이를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에라토스테네스의 수학 계산대로라면 실제가 얼만지는 몰라도 어느정도 오차 등을 감안해도 적어도 3만 5천 킬로미터는 넘는 크기의 지구인데, 거기서 반절 가까이 차이가 나는 주장을 하며 투자해 달라고 하니 미친 놈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결국 콜롬버스가 투자를 못 받았던 것은 당시의 편견 때문이 아니라 콜롬버스의 말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콜롬버스는 자기에게 발견한 재물의 10%를 떼어 달라느니, 그곳의 총독으로 임명해 달라느니라는 둥, 무리한 요구를 많이 했기 때문에 거절 당한 것이었다.
어찌되었든 콜롬버스는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을 유럽에 알렸고, 그는 죽을 때까지도 자기가 발견한 곳이, 인도, 혹은 아시아라고 굳게 믿었다. 물론 그 근거는 그 때쯤이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그의 계산에 근거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한편, 세간의 인식과 달리 실제 지구 편평설의 주장은 그 이후에도 굽혀지지 않았다. 심지어 19세기의 영국 과학자 사뮤엘 로버텀은 지구가 편평하다는 주장을 했고,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지구편평학회라는 조직까지 만들어질 정도였다. 결국 1946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V2 로켓을 대기권으로 쏘아보내면서 촬영시킨 카메라의 영상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확인되고 나서야 이 모는 논쟁은 종식될 수 있었다.
사실, 지구가 편평하다는 생각은 천문학이 발전하기 이전부터는 보편적인 생각이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고차원의 수학과 과학은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고, 전승되는 이야기에 근거해서 지구가 네모 편평하다고만 생각했다. 당시의 세계 지도라는 것을 보면 지구 밖은 매우 위험한 세상으로 그려져 있거나 아니면 매우 양심적으로(...) 자기가 아는 곳까지만 그려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지구가 둥글 것이다라고 깨달은 학자들은 많았고, 많은 이들이 여행기나 관련 자료에 이에 대한 증거를 썼다. 그리고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밤에 밝게 빛나는 달의 일부분이 어두워지는 현상이 사실은 태양빛을 반사해서 반짝이던 달에 그림자가 져서 그런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그림자는 바로 달과 태양 사이를 가리고 있는 지구의 그림자라는 것까지 깨닫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증거를 시작으로 그리스의 수학자들은 지구가 둥글다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리스 수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하기에 이르렀다.
시에네(지금의 아스완)의 우물에 하지날 태양빛이 바닥까지 비치는 일이 있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이 이야기를 듣고 비슷한 시기, 자신이 살고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우물은 어떤지 살펴봤다. 그 결과 같은 상황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우물 바닥에는 햇빛이 비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결과 에라토스테네스는 태양이 시에네의 우물 바닥을 비추던 시점에 태양의 위치는 수직이라는 것을 파악했고, 동시간 대의 알렉산드리아는 거기서 조금 치우친 위치에 있기 때문에 태양빛이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가 구형이며, 그렇기 때문에 똑같이 내리는 햇빛이 동일한 위치에 내리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지구의 크기를 계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계산을 실시함으로써 그것이 옳다는 것을 증명했다. 단, 에라토스테네스는 당시의 한계로 인해 가정에서 몇 가지 부분이 틀렸고,(가령 지구는 완벽한 구형이 아니다) 그로 인해 계산 방법에 따라 오차는 실제와 2%(현재의 미터법을 이용한 자의적 해석 기준)에서 20%까지 나타난다.
어쨌든,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로마와 아랍, 이집트 등으로 퍼져 나갔고, 그 후계자들은 이런 사실을 잘 이어 나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가 편평하다는 주장은 계속되었다. 물론 그것은 압도적인 수준이 아니었고, 종교가 과학을 찍어누르던 시대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냥 가벼운 입씨름 정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적어도 콜롬버스 시대에는 지리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 지던 시점이었고, 적어도 콜롬버스를 제외하더라도 왕실의 지도학자들이라면 확인은 안되지만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 쯤은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 국왕과 스페인 국왕 등이 투자를 거절하고 외면했던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콜롬버스는 자기 나름대로 지구가 둥글다고 가정하고 지구의 크기를 계산해 봤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했다. 콜롬버스는 자신의 가정과 계산의 조건들 중에서 몇가지 중요한 부분들을 실수로 놓치고 말았다. 그 계산의 결과 콜롬버스는 지구의 둘레를 2만 5천 킬로미터라고 계산해 버리는 중차대한 실수를 저질르고 말았다. 이 실수가 얼마나 큰거냐면, 실제 지구의 둘레는 약 4만 킬로미터이다. 즉, 콜롬버스는 계산 중 태평양과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을 싹 지워버리고 계산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서는 북서부 아프리카의 카나리 제도와 일본(지팡구)의 거리가 고작 3,700킬로미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물론 실제는 그것의 열배가 넘는 거리였으며, 콜롬버스의 계산에 따른 위치에는 바다만 있었을 뿐이었다....
자기 계산에 이렇게 나오니 콜롬버스는 당연히 서쪽으로 가면 지금보다 덜 힘들이고 인도까지 갈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궁중의 학자들은 이를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에라토스테네스의 수학 계산대로라면 실제가 얼만지는 몰라도 어느정도 오차 등을 감안해도 적어도 3만 5천 킬로미터는 넘는 크기의 지구인데, 거기서 반절 가까이 차이가 나는 주장을 하며 투자해 달라고 하니 미친 놈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결국 콜롬버스가 투자를 못 받았던 것은 당시의 편견 때문이 아니라 콜롬버스의 말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콜롬버스는 자기에게 발견한 재물의 10%를 떼어 달라느니, 그곳의 총독으로 임명해 달라느니라는 둥, 무리한 요구를 많이 했기 때문에 거절 당한 것이었다.
어찌되었든 콜롬버스는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을 유럽에 알렸고, 그는 죽을 때까지도 자기가 발견한 곳이, 인도, 혹은 아시아라고 굳게 믿었다. 물론 그 근거는 그 때쯤이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그의 계산에 근거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한편, 세간의 인식과 달리 실제 지구 편평설의 주장은 그 이후에도 굽혀지지 않았다. 심지어 19세기의 영국 과학자 사뮤엘 로버텀은 지구가 편평하다는 주장을 했고,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지구편평학회라는 조직까지 만들어질 정도였다. 결국 1946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V2 로켓을 대기권으로 쏘아보내면서 촬영시킨 카메라의 영상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확인되고 나서야 이 모는 논쟁은 종식될 수 있었다.
2014년 6월 3일 화요일
영어 개 후달리는 건 역시 어쩔 수가 없음요.....
Moscow To Stalingrad에서 스탈린그라드 부분 번역하려고 하는데 한 쪽 번역하기도 좀 많이 어렵네요....
물론 요즘에 장시간동안 진득하니 붙어서 공부하거나 자료 모으는데 게으르다 보니 그렇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요즘엔 좀 문제가 많긴 하죠.... 돈도 없고, 일자리도 없고....
그러고 보니 토익 본지 한참되었는데 토익 시험 좀 다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요즘에 장시간동안 진득하니 붙어서 공부하거나 자료 모으는데 게으르다 보니 그렇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요즘엔 좀 문제가 많긴 하죠.... 돈도 없고, 일자리도 없고....
그러고 보니 토익 본지 한참되었는데 토익 시험 좀 다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메르카토르 도법에 대한 잘못된 오해
메르카토르 도법은 우리가 흔히 세계지리책에서 볼 수 있는 지도를 편집하는 방식을 말한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구의 형상을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규칙 같은 것이다.
지구는 불완전한 구체인데, 이를 세계지도로 표현하자면 엄청난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비유하자면 오렌지를 한 장의 종이에 완전히 감싸려고 하면 아무리 잘 밀어도 오렌지를 감싸는 종이에는 구김이나 주름이 생기게 된다. 물론 종이를 잘게 잘라서 부분부분 붙인다면 주름이나 구김은 생겨나지 않는다. 지도도 마찬가지다. 일부분만을 확대한 대축척 지도에서 오류는 매우 적게 나타나지만, 대축척 지도들의 축척 비율을 줄이고 줄이면서 나타나는 소축척 지도들은 결과적으로 미세했던 오류가 하나둘씩 눈에 띄게 나타나면서 거대한 오차를 발생시키게 된다.
평면지도가 바로 이런 오차를 발생시키는 요인이다. 만약 지구를 한 장의 평면 지도로 표현해야 한다면 우리는 지구를 여러 갈래로 잘개 쪼개놓은 매우 흉측하고 이해하기에 매우 곤란한 모습으로 봐야 한다. 이에 대한 오차를 줄이고자 만들어진 것이 바로 지도 투영법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메르카토르 도법이다. 메르카토르라는 이름은 16세기의 지도제작자에서 따온 이름인데, 그가 만든 지도 투영법을 그의 이름을 따 메르카토르 도법이라 부르는 것이다. 메르카토르 도법의 가장 큰 특징은 지도 전체가 네모난 평면을 완전히 덮고 있으며, 방향에 있어서만큼은 다른 투영법들에 비해 매우 정확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점 때문에 16세기에 메르카토르 도법의 지도는 항해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한편, 이 지도 또한 다른 지도와 마찬가지로 오류가 있었는데, 방향에 대해서 몰빵한 만큼 다른 부분들에 있어서는 왜곡이 상당히 컸다. 이유는 바로 지도 전체가 사각형의 평면을 완전히 덮고 있다는 점 때문인데, 구체를 평면상에 표현하자면 아래 그림들처럼 그려야 했다.
메르카토르 도법은 이를 무시하고 아예 극지점을 늘려서 사각형에 맞췄는데,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에 고위도 지역이 대폭 커져 보이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즉, 적도에서 위로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왜곡되어 보이는 현상이 뚜렷하고 심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 지도에 대한 오류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들을 정리해 보자면,
1. 지도에서 러시아는 아프리카와 맞먹는 크기이나 실제로 러시아의 국토 면적은 아프리카의 절반 수준이다.
2. 지도에서 그린란드는 아프리카와 맞먹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 그린란드와 아프리카의 면적 차이는 14배 가량이나 난다.
3. 한반도와 아이슬란드는 크기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 면적은 남한 면적에 비슷하다.
4. 독일이 일본보다 더 커보이나, 실제로는 일본이 독일보다 더 크다.
뭐 이정도가 되겠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메르카토르 도법이 서구중심적 사상이 낳은 왜곡된 지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그건 잘못된 편견이다. 메르카토르 도법은 어떻게 꾸며도 저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며, 유럽이 아프리카보다 크게 나온다거나 하는 것도 정말 우연찮게 나타나게 된 현상이다. 애초에도 말했지만, 이 지도는 항해용으로 장거리 항해시 위치와 방향을 정확하게 잡을 수 있는데 주안을 둔 지도이다. 거기다가 적도를 횡축으로 두고 있는 모습으로 인해 읽기가 쉽고, 평면을 가득 채운 덕분에 이해하기는 더 쉬워서 일반 보급용으로도 잘 나가는 도법이었을 뿐이었다. 위의 다른 도법의 지도들을 다시 한 번 보고 비교해 보자. 과연 판매자라면 어느쪽 지도를 팔았겠는지.
애초에 메르카토르 지도를 까기 위해 만들어진 지도라는 것도 세계 지도로 꾸미면 오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실제 오류가 있었음을 지적하기 위해 메르카토르로 만들어진 지도의 객체들을 일부러 압축시켜 비교하기도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쪽이 더 왜곡된 이미지이다. 그나마 이런 오류를 줄이고 줄인게 20세기 밀러라는 사람이 만든 밀러 도법인데, 이쪽도 결국 극지방의 오류는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구글어스 등으로 인해 지금은 지구를 구체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평면 지도 쪽에서는 여전히 이 문제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이다.
결론: 문과놈들 자기 머리로 이해 안된다고 음모론 ㄴㄴ염. ㅉㅉ
지구는 불완전한 구체인데, 이를 세계지도로 표현하자면 엄청난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비유하자면 오렌지를 한 장의 종이에 완전히 감싸려고 하면 아무리 잘 밀어도 오렌지를 감싸는 종이에는 구김이나 주름이 생기게 된다. 물론 종이를 잘게 잘라서 부분부분 붙인다면 주름이나 구김은 생겨나지 않는다. 지도도 마찬가지다. 일부분만을 확대한 대축척 지도에서 오류는 매우 적게 나타나지만, 대축척 지도들의 축척 비율을 줄이고 줄이면서 나타나는 소축척 지도들은 결과적으로 미세했던 오류가 하나둘씩 눈에 띄게 나타나면서 거대한 오차를 발생시키게 된다.
평면지도가 바로 이런 오차를 발생시키는 요인이다. 만약 지구를 한 장의 평면 지도로 표현해야 한다면 우리는 지구를 여러 갈래로 잘개 쪼개놓은 매우 흉측하고 이해하기에 매우 곤란한 모습으로 봐야 한다. 이에 대한 오차를 줄이고자 만들어진 것이 바로 지도 투영법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메르카토르 도법이다. 메르카토르라는 이름은 16세기의 지도제작자에서 따온 이름인데, 그가 만든 지도 투영법을 그의 이름을 따 메르카토르 도법이라 부르는 것이다. 메르카토르 도법의 가장 큰 특징은 지도 전체가 네모난 평면을 완전히 덮고 있으며, 방향에 있어서만큼은 다른 투영법들에 비해 매우 정확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점 때문에 16세기에 메르카토르 도법의 지도는 항해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한편, 이 지도 또한 다른 지도와 마찬가지로 오류가 있었는데, 방향에 대해서 몰빵한 만큼 다른 부분들에 있어서는 왜곡이 상당히 컸다. 이유는 바로 지도 전체가 사각형의 평면을 완전히 덮고 있다는 점 때문인데, 구체를 평면상에 표현하자면 아래 그림들처럼 그려야 했다.
![]() |
| 호몰로사인도법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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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케르트 제4도법 출처 |
| 시뉴소이달도법 출처 |
메르카토르 도법은 이를 무시하고 아예 극지점을 늘려서 사각형에 맞췄는데,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에 고위도 지역이 대폭 커져 보이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즉, 적도에서 위로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왜곡되어 보이는 현상이 뚜렷하고 심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 지도에 대한 오류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들을 정리해 보자면,
1. 지도에서 러시아는 아프리카와 맞먹는 크기이나 실제로 러시아의 국토 면적은 아프리카의 절반 수준이다.
2. 지도에서 그린란드는 아프리카와 맞먹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 그린란드와 아프리카의 면적 차이는 14배 가량이나 난다.
3. 한반도와 아이슬란드는 크기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 면적은 남한 면적에 비슷하다.
4. 독일이 일본보다 더 커보이나, 실제로는 일본이 독일보다 더 크다.
뭐 이정도가 되겠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메르카토르 도법이 서구중심적 사상이 낳은 왜곡된 지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그건 잘못된 편견이다. 메르카토르 도법은 어떻게 꾸며도 저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며, 유럽이 아프리카보다 크게 나온다거나 하는 것도 정말 우연찮게 나타나게 된 현상이다. 애초에도 말했지만, 이 지도는 항해용으로 장거리 항해시 위치와 방향을 정확하게 잡을 수 있는데 주안을 둔 지도이다. 거기다가 적도를 횡축으로 두고 있는 모습으로 인해 읽기가 쉽고, 평면을 가득 채운 덕분에 이해하기는 더 쉬워서 일반 보급용으로도 잘 나가는 도법이었을 뿐이었다. 위의 다른 도법의 지도들을 다시 한 번 보고 비교해 보자. 과연 판매자라면 어느쪽 지도를 팔았겠는지.
애초에 메르카토르 지도를 까기 위해 만들어진 지도라는 것도 세계 지도로 꾸미면 오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실제 오류가 있었음을 지적하기 위해 메르카토르로 만들어진 지도의 객체들을 일부러 압축시켜 비교하기도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쪽이 더 왜곡된 이미지이다. 그나마 이런 오류를 줄이고 줄인게 20세기 밀러라는 사람이 만든 밀러 도법인데, 이쪽도 결국 극지방의 오류는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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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카토르 도법 출처 |
결과적으로 구글어스 등으로 인해 지금은 지구를 구체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평면 지도 쪽에서는 여전히 이 문제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이다.
결론: 문과놈들 자기 머리로 이해 안된다고 음모론 ㄴㄴ염. ㅉㅉ
2014년 6월 2일 월요일
으아아아아....
지도에 관련된 전쟁사를 쓰려고 했더니만, 어마어마할 정도로 자료가 안나오는 군요;;;;;
이거 보통 때도 별로 자료가 없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로 없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심지어 지리에 어두워 패했다는 기록은 많았던 것 같은데, 정작 그게 어느 전투에서 그랬다는 건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양은 많으면서 정작 살이 있는게 없네요;;;;
이거 보통 때도 별로 자료가 없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로 없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심지어 지리에 어두워 패했다는 기록은 많았던 것 같은데, 정작 그게 어느 전투에서 그랬다는 건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양은 많으면서 정작 살이 있는게 없네요;;;;
2014년 6월 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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